▲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를 은폐, 축소하도록 지시하고 수사 방해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지방경찰청이 대선을 앞두고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던 정황이 당시 수사 실무를 지휘했던 일선 경찰서장의 법정 진술을 통해 드러났다.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재판에서 이광석 전 수서경찰서장은 작년 12월 17일 발표된 '국정원 사건 중간 수사결과' 내용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작년 12월 16일 오후 10시 30분께 이 사건 중간 수사결과 보도자료를 수서경찰서에 보냈다. 수서서는 같은날 오후 11시 자료를 배포하고 대선 이틀 전인 17일 공식 브리핑을 했다.

서울청은 브리핑 예상 질의·답변 자료를 작성해 수서서 측에 제공하는 등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서울청 분석팀이 국정원 직원 김모씨가 임의 제출한 노트북 등 컴퓨터 2대를 분석한 결과 공직선거법·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 등 관련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이광석 전 서장은 당시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포털이나 인터넷 접속 기록을 다 확인해봤으나 댓글 등을 확인할 수 없었다"며 "이런 결론은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수서서 수사팀은 중간 수사결과 발표 직후 서울청 분석팀으로부터 국정원 직원 노트북에서 발견된 텍스트 파일상 아이디·닉네임 40개를 확보해 다수의 게시 글과 찬반 클릭을 찾아냈다.

권은희 전 수서서 수사과장은 지난달 30일 공판에서 "이광석 당시 서장이 이같은 사실을 내게 보고받고 '서울청장이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라고 말했다"고 전한 바 있다.

이 전 서장은 이날 공판에서 "사전에 텍스트 파일을 받아 구글링을 했더라면 16일 보도자료와 17일 발표처럼 했겠느냐"는 검찰 측 신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 아쉬움이 있다"고 답했다.

당시 허위 사실을 발표한 경위에 관해서는 "서울청 분석팀을 믿었다. 브리핑 장소에 직접 나온 분석팀 몇 명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그대로 발표했을 뿐"이라고 증언했다.

이 전 서장은 '혐의 사실 관련 내용을 확인 못함'이라고 돼 있었던 서울청의 분석 결과 보고서에 대해서도 "브리핑 때는 몰랐지만 저 문구는 약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시인했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이 전 서장이 서울 강남 지역을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 신모씨와 작년 12월 12~16일 10여차례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신씨는 이 전 서장에게 경찰 수사 상황을 물었다.

이 전 서장은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수사 상황을 자꾸 물어봐서 민감한 사건이니까 전화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