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모자 실종사건. 23일 오전 9시 10분께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가사리 야산에서 실종자 김애숙(58·여)씨와 정화석(32)씨 가운데 1명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 사진은 지난달 22일 오후 인천 모자 실종사건 용의자로 긴급체포됐던 용의자 정모(29)씨가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인천에 살던 어머니와 형을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체포된 차남 정모(29)씨는 사건 수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

23일 경찰발표를 종합해보면 퀵서비스 배달원인 차남은 최근 1년간 강원랜드를 30여 차례 다니며 8천만원의 도박빚을 지게됐다. 이후 10억원대의 원룸건물을 소유한 어머니(58)에게 돈을 빌리려고 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갈등을 빚었다.

차남은 지난 7월 20일 아무런 말도 없이 인천 남구 용현동 어머니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따고 들어와 "5천만원에서 1억원을 달라. 돈을 주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면서 어머니에게 돈을 요구했다.

어머니는 실종 4일 전인 8월 9일 지인들에게 "막내(차남)눈빛이 무서워 나를 죽일 수도 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꿨다"는 말을 하는 등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음을 주위에 알렸다.

차남은 범행 수개월 전인 5월부터 7월까지 살인·실종사건과 관련된 시사고발 프로그램 29편을 인터넷에서 내려받았다. 이 가운데는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사건을 다룬 프로그램도 포함돼 있었다.

범행 3일 전 차남은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면장갑과 청테이프, 락스를 구입했다. 이틀전엔 남동구 논현동 자신의 집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포맷하고 휴대전화를 초기화했다. 경찰이 차남의 컴퓨터를 압수해 분석한 결과 차남은 '가족명의 주택담보 대출', '가족간 자동차 명의이전 서류' 등을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후 모자의 재산을 가로챌 생각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 대목이다.

범행당일인 8월 13일 오전 9시~10시 사이 차남은 어머니 집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차남이 집에 오기 전인 오전 8시30분 집 근처 현금인출기에서 20만원을 인출한 뒤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어머니와 같은 집에서 살던 미혼의 장남도 같은 날 오후 7시 40분 친구와의 전화통화를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장남은 다음날 다니던 회사와 재계약을 앞두고 있었다.

 
 
▲ 인천 모자 실종사건. 23일 오전 9시 10분께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가사리 야산에서 실종자 김애숙(58·여)씨와 정화석(32)씨 가운데 1명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 사진은 22일 윤정기 인천 남부경찰서 형사과장이 브리핑하는 모습. /연합뉴스
차남은 8월 14일 오후2시 45분 장남 소유 혼다시빅 승용차량을 타고 인천 용현동을 빠져나간다. 당시 인근 주유소 CCTV에 찍힌 차량의 모습을 국립과학수사원이 분석했더니 125㎏ 상당의 물건이 적재돼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때문에 경찰은 차남이 8월 13일 모자를 살해한 뒤 다음날 시신을 차량에 싣고 용현동 일대를 빠져나온 것으로 보고있다.

차남은 인천 남구 학익동에서 부인 김모(29)씨와 만나 함께 강원도 정선과 경북 울진 일대에서 모자의 시신을 각각 유기했다는 게 경찰의 분석이다. 차남이 고속도로 요금소를 통과하면서 통행증에 남긴 지문은 수사초기부터 경찰이 차남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

차남은 시신 유기 후 인천으로 돌아와 8월 16일 오후4시 40분 경찰에 "어머니와 형이 실종됐다"고 신고했다. 차남은 당시 경찰에서 "수면제를 먹고 어머니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형이 깨워서 집으로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차남은 범행 이후 락스를 추가로 구입했으며, 금반지와 전자제품 등 모자의 금품을 팔아치우기도 했다.

 
 
▲ 인천남부경찰서는 23일 오전 강원도 정선군 일대의 한 야산에서 실종 모자 중 어머니(58)로 보이는 시신 1구를 발견했다. /연합뉴스=인천경찰청 제공
경찰은 차남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8월 22일 긴급체포했지만, 시신을 찾지 못해 '증거불충분'으로 하루만에 풀어줬다. 이후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대대적인 실종자 수색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차남의 부인이 최근 범행사실을 인정하고 시신 유기장소를 구체적으로 지목함에 따라 수사가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

경찰은 지난 18일 약속된 경찰 출석에 불응한 차남을 만나기 위해 논현동 차남 집에 갔다가 차남이 자살을 시도한 흔적을 발견했다.

경찰은 범죄혐의가 충분히 입증됐고, 차남이 조사에 불응할 여지가 많다고 판단해 법원으로 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지난 22일 오전 차남을 체포했다. 이후 이날 오전 차남의 부인과 동행해 강원도 정선의 한 야산을 수색한 결과 어머니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차남은 채무가 강원랜드와 상관없다고 주장하지만 강원랜드를 상당히 많이 출입했고, 생활고로 인해 주변사람들에게 돈을 빌린 점을 봤을 땐 도박빚으로 추정된다"며 "강원도 일대를 다녀온 객관적 증거가 있음에도 계속 부인하고 있고, 최근 자살을 시도해 체포하게됐다"고 밝혔다.

/김민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