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추석때 고향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레 교육 문제로 화제가 넘어갔다. 그 중 한토막. 남녀공학에 다니는 여중생 조카가 어느날 엄마에게 같은 반 남학생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엄마가 충격받을까봐 더이상 말을 못하겠다'며 입을 닫아버리더란다. 그래도 자꾸 캐물으니 일부 남학생들이 부모에 대해 욕을 하는 걸 들었는데 그 욕의 내용을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욕의 수위가 어느정도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현 세태를 엿보게 해주는 조카의 귀띔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추석이 지나고 나니 인천 모자 살해 사건이 전국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어머니와 형을 살해한, 특히 형의 시신을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는 20대 남자의 패륜범죄가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이 사건을 접하다 보니 몇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우선 기자 초년병 시절, 심하게 훼손된 사체를 수습하는 현장을 취재하던 일이 생각난다. 토막난 사체를 담은 검은색 비닐봉투들, 멘붕을 초래할 정도의 역한 냄새, 피로 얼룩진 집안 곳곳 …. 십수년전의 일이지만 시각·후각신경이 다시 자극을 받는 듯 당시 현장의 풍경이 왜 그렇게 생생한지 모르겠다. 잠재의식 속에 갇혀있던 기억이 이번 사건을 통해 트라우마로 변형된 느낌이다. 어머니를 살해하고 피를 나눈 형제의 사체를 훼손하는 등 반인륜범죄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을 접하는 마음이 불편하기만 하다.

또 하나는 영화 '공공의 적'을 보았을 때의 기억이다. 돈이 연루된 범행 동기나 치밀함, 양심이 결여된 듯한 범행 후의 태도 등으로 볼 때 영화 공공의 적에서 부모를 살해한 범인과 이번 모자 살해사건의 범인은 여러모로 닮은 듯하다. 영화를 볼 때는 친족살해범인 범인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별로 공감하지 못했는데, 이번 사건을 접하다보니 영화속 범인이나 모자살인사건의 범인이나 가족 간 윤리와 도덕성 등 사회의 소중한 가치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는 점에서 공공의 적이 확실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기억은 10여년 전 희대의 연쇄살인범이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을 때 한 교육계 인사가 기자에게 했던 말이다. 교장선생님 출신인 그는 식사 자리에서 '연쇄살인범 한명 때문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소모적 비용을 치르고 있느냐'며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는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연일 수천명의 경찰이 동원 되는 등 국가적으로 홍역을 치르던 때였다.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과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르치는 일이 훗날 우리사회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을 절약하는 지름길'이라는 그의 주장이 새삼 피부에 와닿는다.

이러한 몇가지 기억을 접으니 조카가 했다는 말이 다시 귓전에 맴돈다. 물론 일부 학생에 불과하겠지만, 학생이 친구들 앞에서 버젓이 자신의 부모를 욕하는 게 동방예의지국의 교실 풍경이라니…. 그래서인지 인성 좋은 학생이 5명 중 1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최근의 언론 보도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물론 인성을 계량화하는 데에는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도덕성, 사회성, 정서 등 인성의 세 영역을 구성하는 10개 지표로 중학생들의 인성을 가늠해 본 결과인지라 상당 부분 공감이 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우리 사회의 과도한 경쟁의식, 이에 따른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여 인성교육이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는 전인교육은 퇴색된 단어로 전락한 게 우리 교육 현장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가정이 인성교육의 보완적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매일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아이들이 극소수고 밥상 앞에서 나누는 얘기도 '공부 잘하고 있느냐'가 주제라는 조사결과도 있다고 하니 밥상머리 교육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우리의 학교와 가정에서 패륜범죄의 씨앗이 이미 싹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