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가 셧다운(부분 업무정지)에 돌입한 지 일주일이 됐지만 정국은 여전히 '시계제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척점에 서 있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이 조심스럽게 타협을 시도해보려는 기류가 나타나고 있으나 양쪽 모두에서 여전히 강경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의 대치정국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가 현실화될 17일에 임박해서야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 정부 넘어 산업계로 파장 확산

셧다운 사태가 일주일을 넘기면서 민간 산업계에도 부정적 여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시 해고된 공무원 80여만명은 미국 하원이 5일 보수를 소급지급하기로 의결하면서 '구제'됐지만 정작 정부를 위해 일하는 민간 하청업자들이다.

한 산업계 단체에 따르면 셧다운 이후 30여만명의 민간 하청업자들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비공식 집계됐다.

특히 정부 계약으로 방산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7일부터 직원들을 본격적으로 일시해고하기 시작했다. 미국 최대 방산업체로 F-35 전투기 등을 생산해 국방부에 납품하는 록히드마틴은 셧다운 여파로 직원 2천400명을 이날부터 집에서 쉬도록 조처했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항공기 제조업체인 미국 보잉은 연방항공국 조사관들이 일시 해고되면서 새로 만든 항공기들을 운반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 수입될 제트블루 에어버스 항공기도 당국의 점검절차를 밟지 못해 유럽에 발이 묶여 있다.

◇ 사고대처·재난관리도 '흔들'

지난 주말 워싱턴 메트로 지하철 노선에서 치명적 폭발사고가 발생했으나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관련 인력들이 모두 강제 무급휴가 조치를 당한 바람에 조사팀 자체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허리케인 시즌이 다가오면서 재난관리에도 '구멍'이 생길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행히도 최근 열대성 태풍 카렌이 큰 피해를 입히지 않은 채 소멸됐지만 연방재난관리청(FEMA) 소속 인력이 부족해 제대로 된 재난 대처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셧다운으로 '헤드 스타트' 유아교육 프로그램 지원 예산이 끊어지면서 플로리다주와 코네티컷 주 등 몇 개 주들이 관련시설이 문을 닫은 상태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해당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는 수백만명의 유아들이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미국 현지언론들은 보도했다.

◇ 오바마 행정부, '타협 가능성' 시사

이처럼 셧다운 장기화에 따른 부정적 여파가 커지자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 사이에 미세하나마 타협의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오는 17일로 국가 부채 증액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공화당과 "협상할 생각이 없다"던 오바마 행정부가 타협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한 것이 계기점이다.

현 정부의 핵심 경제브레인인 진 스펄링 백악관 국가경제회의(NEC) 의장이 7일(현지시간) "부채상한 증액 기간이 길수록 좋지만 이건 전적으로 의회에게 달려있다"고 말한 것이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기에 원칙적 발언이기는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워싱턴 연방재난관리청을 방문해 "예산과 재정문제를 놓고 공화당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도 의미 있는 변화 조짐으로 해석되는 분위기다.

팽팽한 대치국면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타협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양측이 접점을 찾으려는 협상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셧다운 장기화에 이어 국가디폴트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보이면서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경제 전반에 불안정성이 확산되고 있고, 이것이 국정운영 전반을 책임진 오바마 행정부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단기증액안' 타협안 대두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가 본질적으로 공화당에 '양보'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출구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화당이 희망하는 대로 오바마케어 예산과 재정지출 삭감, 복지·세제개혁 등 핵심쟁점을 뭉뚱그려 국가부채 조정협상과 연계하는 큰 틀의 담판을 시도하기보다는 부채한도 증액의 폭과 기간을 '미세조정'하는 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의회가 예산안과 부채상한 증액안을 통과시키는 게 우선이라고 거듭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100% 얻지 않으면 정부를 폐쇄하든지 국가를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로 만들겠다고 협박하는 상황에서는 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국가 부채조정과 관련해 '단기증액안'이 중재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7일자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현재 백악관은 '1년 이하의 단기증액안'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공화당 일각에서 부채한도를 최소 6주에서 6개월 정도 연장하자는 아이디어가 일종의 중재안으로 대두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지난 2011년 연방정부 부채상한 증액 때만 해도 '1년 증액'을 고집했던 오바마 행정부가 상대적으로 탄력적인 대응을 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공화당내 여전한 강경론…조기타협 불투명

문제는 현재의 공화당 지도부가 오바마 행정부의 타협안을 수용할지다. 이번 기회에 오바마케어를 확실히 '사산'시키겠다는 각오를 보이는 당내 극단적 강경파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베이너 의장이 이끄는 당 지도부가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할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공화당 내에는 온건파가 적지 않지만 강경론에 눌려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테니 호이어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는 "하원 공화당 의원 232명 중에 현재 상황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의원이 140명에서 160명에 달하지만 이들은 티파티 세력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양측이 의미 있는 타협점을 도출해내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중론이다. /워싱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