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동양그룹이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등 3개 계열사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한다고 30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청계천로 ㈜동양 본사 모습. /연합뉴스 |
채권자들의 반발 속에 동양시멘트 등 동양그룹의 5개 계열사에 대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내려지자 논란이 일고 있다.
법정관리로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등 투자자들의 손실은 현실화하게 된 반면 검찰 수사 결과 처벌 가능성이 있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등 대주주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조정이 진행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동양그룹의 구조조정이 이해관계자 간 갈등 등으로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면서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 논란 많은 동양그룹 5개사 법정관리 결정 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7일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동양시멘트, 동양네트웍스 등 동양그룹 5개 계열사에 대한 법정관리 개시 결정을 내렸다.
법원의 이런 결정은 철저하게 통합도산법상 법리 해석에 따른 것이다. 법원은 청산보다 존속가치가 높고, 부도로 도산을 피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동양시멘트는 정상화 가능성이 큰 회사인데 자금이 바닥나 법정관리가 기각되면 부도를 면할 수 없어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본다"며 "법원이 철저하게 법리적인 해석에 충실해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는 동양그룹 사태를 둘러싼 채권자들의 기대와 이해관계자 간 갈등 등을 감안하지 않은 결정이어서 논란이 따른다.
애초 업계에선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은 법정관리 신청 기각 결정이 내려져 청산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봤다. 그룹 순환출자 고리에서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중간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지만, 뚜렷하게 영위하는 사업이 없는데다 이미 완전자본잠식 상태의 껍데기 회사여서 회생하더라도 계속 영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동양시멘트는 그룹의 모태 기업으로서 핵임 사업을 영위하고 있어 굳이 법정관리를 통한 구조조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특히 채권은행과 개인투자자들이 동양시멘트 법정관리에 반대하고 나서는 등 반발이 거셌기 때문에 역시 기각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관측됐다.
그룹 내부에서조차 통합도산법상 관리인 유지제도(DIP)에 따라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구조조정을 할 목적으로 동양시멘트에 대한 법정관리 신청 결정을 했고, 일부러 보유 현금을 모두 썼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5개 계열사가 모두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되면서 협력업체와 동양그룹 계열사의 회사채·기업어음(CP) 투자자 등 채권자들과 동양시멘트 주식을 담보로 ㈜동양이 발행한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거의 모두 회수하지 못한 채 상당한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통합도산법이 실질적인 구조조정 등 효과를 배제한 채 융통성이 전혀 없다 보니 부실기업들이 법적 근거가 미약한 채권단 자율협약 등 채권단 주도 구조조정을 하게 되는 것"이라며 "통합도산법이 실질적인 기업구조조정에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 현 대주주, 구조조정에 입김 가능성 '논란'
5개사 중 일부 계열사의 법정관리인에 현 대표이사들이 선임됐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재판부는 동양과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에 대해 박철원, 금기룡, 손태구 등 기존 대표이사 이외에 각각 정성수 전 현대자산운용 대표이사, 최정호 전 하나대투증권 전무, 조인철 전 SC제일은행 상무를 공동 관리인으로 선임했다.
동양네트웍스에는 김형겸 이사가 관리인으로 선임됐고 김철·현승담 대표이사는 회생절차에서 배제됐다.
동양시멘트는 별도의 관리인을 선임하지 않아 김종오 현 대표이사가 법정관리인 역할을 하게 됐다. 김종오 대표는 대주주의 최측근 라인은 아니지만, 법정관리 개시 전까지 공동 대표를 지냈다.
동양 등 3개 계열사에 공동 관리인을 선임한 것이나 대주주의 실세라인으로 지목된 김철 대표와 현 회장 장남인 현승담 대표를 배제한 것은 융통성을 발휘한 결정이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현 대주주의 입김이 미칠 수 있는 구조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통합도산법상 관리인 유지제도(DIP)에선 오너 경영자가 법적인 하자가 없다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법원은 현 회장 등 오너와 경영자에 법적으로 결격 사유가 없고, 회사 사정을 잘 알고 있어 제3자보다 구조조정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관리인에 선임된 동양 경영자들 역시 부실과 투자자 손실을 초래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데다 현 대주주가 사실상 구조조정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어 채권자들의 입장은 형평성 있게 고려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법원이 채권자들이 추천한 구조조정임원(CRO)을 선임토록 하기로 했으나 대주주 영향력에서 진행될 구조조정에선 의미가 별로 없다고 평가받는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검찰 조사 결과 대주주가 위법 등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현 경영진이 관리인에 선임된 것은 문제"라며 "문제가 있는 대주주와 그의 영향력하에 있는 경영자가 관리인으로 선임된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이 성공한 사례는 없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