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6년째인 국민참여재판이 위기를 맞았다. 정치권은 최근 선거법 위반이나 정치인에 대한 명예훼손 등 민감한 사안에 잇따라 무죄 평결이 내려지자 집중 포화를 퍼붓고 있다.

대법원이 현재 권고적 효력만 지니는 배심원 평결을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따르도록 관련 법률에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거센 저항에 부딪히는 양상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은 지난 29일 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불만을 온종일 쏟아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안도현 시인과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 패널들에 대한 무죄 평결을 집중 성토했다.

정치권의 비판은 두 가지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안 시인의 재판이 열린 전주지역 유권자들이 지난해 대선에서 문 후보에게 80% 이상의 지지를 보낸 점을 언급했다.

배심원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법정에 나와 무죄 평결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배심원은 무작위로 추천된 법원 관할 지역 거주자 중에서 선정된다.

문 의원은 재판 첫날인 지난 28일 전주지법을 찾아 공판을 30분 가량 방청하고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의원들은 같은 맥락에서 법을 잘 모르는 일반 시민에게 유·무죄와 양형에 대한 판단을 맡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특히 명예훼손이나 선거법 위반 사건의 경우 자신도 검사 시절 "판례를 읽을수록 헷갈렸다"고 말했다. 사실관계가 아닌 법리 해석이 판단의 주요 기준이 되는 사건을 일반 시민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것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정치권이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취지를 잘못 이해했거나 알면서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배심원이 낸 평결은 한 개인의 사적 의견이 아닌 국민 전체를 대표한 의사 표시로 봐야 하고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울지역의 한 법원에 근무하는 부장판사는 "한두 가지 판결이 정치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참여재판 전체를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절대 다수의 사건에서 배심원 평결과 재판부의 판결이 일치하는 점을 보면 일반인의 상식을 반영한 평결과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법관의 판단이 질적으로 다르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도입 첫해인 2008년부터 지난달까지 치러진 국민참여재판 1천9건 가운데 유·무죄를 배심원 평결과 달리 판결한 사건은 전체의 7.5%인 82건에 불과했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는 "배심제의 취지는 국민의 법감정과 법의식을 재판에 반영하자는 것"이라며 "미국에서도 배심원들의 평결이 정치·인종적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이 가끔 있지만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