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5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5일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하면서 진보당 전체가 '종북정당화'해 헌법의 근간인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소위 '주사파'라고 불리는 민족해방(NL.Nation Liberation) 계열이 진보당을 장악해 북한식 사회주의 추구를 이념으로 삼아 활동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특히 진보당 소속 인사들이 민주노동당 창당 시절부터 최근까지 세력 확대와 당권 장악을 위해 북한의 지령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인적 구성부터 정당 목적, 활동이 모조리 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나 진보당을 이대로 놔둘 경우 우리나라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NL 계열이 주도권 잡은 진보당 = 진보당의 형식적 뿌리는 민주노동당으로 거슬러간다.

민노당은 2000년 1월 민주노총 등 노동 세력 중심으로 계급해방에 중점을 두고 창당했다.

이런 민노당의 성향이 변하기 시작한 건 이듬해 NL 계열이 입당하면서부터다.


▲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안과 관련해 5일 서울 대방동 통합진보당사에서 긴급회의가 열린 가운데 한 관계자가 당사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NL 계열이 2012년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이른바 '군자산의 약속(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을 계기로 현실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군자산의 약속이란 2001년 9월 NL 계열 인사들이 충북의 군자산 인근에 모여 3년 내에 광범위한 대중 조직화를 통해 '민족민주정당'을 건설하고 10년 내에 '자주적 민주정부 및 연방 통일조국'을 건설하기로 결의한 것을 말한다.

2012년은 김일성이 태어난 지 100주년 되는 해로 북한은 사회주의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로 지정한 바 있다.

민노당에 입당한 NL 계열, 특히 이석기 의원이 주도한 'RO(혁명조직)'는 북한 대남혁명론에 따라 민노당을 기틀로 혁명 역량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다른 계파들을 규합해 '범 경기동부연합'으로 재탄생했다.

민노당 내 NL 계열은 2004년 이후부터 당권을 장악하게 된다.

2004년 1월 최고위원 선거에서 당선된 13명 중 6명이 NL 계열이었으며 2006년 제2기 최고위원 선거에서는 당 대표와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등 당3역을 모조리 차지했다.

그러나 2006년 북한의 핵개발과 2007년 일심회 사건 관련자 제명 건 등을 계기로 당내 균열이 생겼고 결국 진보신당계가 떨어져 나오게 된다.


▲ 이정희 대표가 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긴급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이 이날 국무회의를 통과한 것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NL 계열 중심의 민노당은 2011년 12월 유시민 전 의원의 국민참여당계와 심상정 의원 등의 진보신당계와 전략적으로 손을 잡는다. 이때 통합진보당 명칭이 처음 사용됐다.

하지만 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을 계기로 다시 쪼개져 국참당·진보신당계 인사들과 결별하게 된다.

이후 RO조직이 주축이 된 범 경기동부연합 세력이 진보당의 당권을 장악했고 이들을 비호·묵인하는 NL 계열 인사만 진보당에 남게 됐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때마다 북한 지령받아 활동 = 정부는 진보당 세력들이 민노당 창당 시절부터 최근까지 세를 확장하고 당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북한 지령을 받았고 상당 부분이 현실화했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그간 공안당국이 적발한 간첩 사건을 토대로 진보당과 북한의 '고리'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 2003년 불거진 민노당 전 고문 강모씨 사건을 예로 들고 있다.

당시 강씨는 민노당 창당 전인 1998년 북한으로부터 정당 준비위원회 결성을 촉구받고 이듬해 북한공작원에게 민노당 창당준비위 조직체계와 중앙위원 명단을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김선동 의원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5일 서울 대방동 당사에서 긴급회의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민노당이 참패하고서는 '민노당이 총선 참패를 극복하고 전국연합, 한총련 등을 규합, 세력 확장에 노력해야 한다'는 지령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이듬해 9월 이후 전국연합 등 NL 계열이 대거 입당하게 된다.

2006년 벌어진 일심회 간첩단 사건을 통해서는 북한이 NL 계열에 민노당 서울시당 및 정책위를 장악하라는 지령을 내린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진보당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강령에 반영하고 2011년 3당 합당을 거쳐 지난해 3월 총선을 앞두고 다른 야당들과의 연대를 추진한 것도 북한의 지령에 따른 조치였다고 보고 있다. 이는 2011년 왕재산 간첩단 사건을 통해 정부가 파악한 내용이다.

◇김일성 사상에 北 강온양면 전술 구사 = 정부는 진보당의 목적과 활동 모두 위헌성을 품고 있다고 판단했다.

우선 정부는 진보당이 최고이념으로 삼은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의 지령에 따라 김일성의 사상을 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일성은 1945년 10월 "진보적 민주주의가 인민에게 자유·권리를 주고 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주장한다"고 강연한 바 있는데 이후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건국이념이 됐다.

정부는 진보당의 강령과 공약에 나타난 진보적 민주주의 이념이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도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 5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통합진보당 정당활동 정지 가처분 신청서. 이날 정부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서와 함께 정당활동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번 정당해산심판 청구는 1988년 헌법재판소가 창설된 이후 첫 사례다. /연합뉴스=뉴스캡처

진보당은 강령에서 '대외적 지배종속관계 극복, 종속적 한미 동맹체제 해체'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남한이 미국에 예속된 식민지라는 북한 주장과 같다는 것이다.

또 강령 중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된 사회가 아니라 소수 특권 세력들이 주인행세를 하는 거꾸로 된 사회'라는 부분도 남한이 소수특권세력에 의한 횡포와 수탈체제라고 비판하는 북한 주장과 같다고 봤다.

이밖에 국가보안법 폐지나 주한미군 철수 주장, 연방제 방식의 통일 추구를 두 집단의 유사점으로 들었다.

결국 진보적 민주주의는 진보당이 보이는 종북성향의 이념적 기초가 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RO 사건을 통해서도 드러났듯 진보당이 북한의 '강온양면' 전술에 따라 활동해 왔다고 설명했다.

즉 혁명의 '준비기'에는 대중정당을 이용해 혁명 역량을 축적하면서 적화혁명을 위한 환경 조성에 주력하고 혁명의 '결정적 시기'에는 폭력·비폭력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남한 전복을 기도한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진보당은 그 지원·외곽기관에도 종북 성향의 인사들이 포진해 있고 차세대 종북세력을 양성할 가능성이 크다"며 "개별적 처벌과 국회 제명 및 자격심사만으로는 반국가활동의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어 해산 심판 청구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