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일각에서 기업이 쌓아둔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를 추진키로 한 데 대해 정부와 여당이 '절대 불가' 입장을 밝혔다.

사내유보금이란 기업의 당기 이익금 중 세금과 배당금, 임원 상여 등 사외로 유출된 금액을 제외하고 이익잉여금, 자본잉여금 등 사내에 축적한 나머지 금액을 말한다. 현금 자산 뿐 아니라 실물 자산도 사내유보금으로 집계된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14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야당은 기업투자가 안 되고 있어 과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사내유보금의 80%가 시설이나 기계장치 등에 투자되고 있는데 회계상으로 내부 유보에 잡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야당 논리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동의 여부를 떠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장을 맡은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 부의장도 "사내유보금 과세는 이중과세에 해당한다"며 "기업이 투자할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각종 법안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국회에 따르면 민주당 추미애 의원 등 야당 의원을 중심으로 적정 수준 이상의 기업 사내유보금에 법인세를 물리는 법인세법 개정안 발의가 추진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45대 대기업 집단의 사내유보금 총액은 313조원에 이른다.

여기에 세금을 매겨 이를 고용과 투자로 이어지게 하고 세수도 확보하자는 것이 과세 논의의 취지다.

추 의원 측은 "복지재원 등이 부족한데도 정부가 법인세율 인상을 반대하는 상황이니 기업이 투자하지 않고 그냥 갖고 있는 사내유보금에 과세하자는 것"이라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내수를 진작시키기 위한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시민단체도 이에 동조한다. 김한기 경제정의실천연합 경제정책팀장은 "저성장과 복지 지출 등으로 정부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대기업이 수익을 사내에 유보하지 않고 과감하게 투자·고용으로 돌려 사회적 책임을 다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1990년 도입됐으나 2001년 폐지됐다. 과세가 사라진 뒤 국내 전체 기업의 사내유보율은 급증했다. 이익잉여금을 자산으로 나눈 사내유보율은 2001년 4.6%에 그쳤으나 2010년 24.1%까지 치솟았다.

기재부는 그러나 당시 이 제도가 자본거래를 이용한 조세회피를 막고 기업들의 주주 배당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투자 유도를 위한 게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사내유보금에 과세할 경우 부작용이 클 수도 있다는 게 정부와 여당의 생각이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국정감사 때 "과세했을 때 투자를 촉진할 수도 있지만 배당을 늘리거나 사내복지에 쓰일 수도 있다"며 "(과세보다는) 오히려 사내유보금이 투자 쪽으로 전환되도록 세제 등 장치를 해주는 게 낫다"고 말했다.

예산정책처도 2011년 용역보고서에서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가 장기적으로 기업의 투자를 감소시킬 가능성이 크고, 단기적으로 투자를 촉진하는 경우에도 부동산 구입 등 바람직하지 않은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풀지 않고 있는 것은 투자처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며 "과세하면 해외로 나가 투자할 가능성이 크다. 투자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기업 사내유보금 과세에 반대 입장을 보임에 따라 야당이 법안을 발의하더라도 입법화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