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가 극단적으로 대치하면서 올해 정기국회가 시작된 뒤 지금까지 3개월동안 국회는 단 한 건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민주당이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대한 새누리당의 단독처리에 항의, 지난달 29일부터 국회 보이콧에 들어가는 등 여야간 대치가 심화돼 오는 10일 폐회하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법안 0건'이라는 초유의 불명예 기록을 남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올해 법안처리 실적이 전무한 까닭은 여야의 강대강 대치로 국회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거나 '정쟁의 장'이 됐음에도 이를 풀어내는 정치력이 부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야 합작품인 셈이다. 안개가 짙게 낀 1일 오전 국회 모습. /연합뉴스

오는 10일로 100일간의 회기를 마감하는 정기국회는 '역대 최악의 고비용 저효율' 국회로 기록될 전망이다.

여야가 소모적인 정쟁 속에 올해도 여지없이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12월2일)을 넘긴 것은 물론 회기 마감 이틀 전인 8일 현재까지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하는 초유의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세웠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여야는 뒤늦게 부산을 떨고 있다.

지난주 여야는 오는 9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와 10일 본회의를 열고 여야간 견해차가 없는 법안 위주로 신속하게 입법을 마무리짓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9일 법사위에서는 예산안만 심사할 예정이었지만 법안심사도 병행하기로 방향을 튼 것이다.

'입법제로 정기국회'가 초읽기에 몰리자 부랴부랴 '땜질처방'에 나선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여야가 중점추진을 약속했던 핵심법안을 무더기로 정기국회의 바통을 넘겨 받는 연말 임시국회로 떠넘겨놓고 이번 정기국회 막바지에선 '면피용'으로 수십건 처리하게 될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둘러싸고 여야가 절충점을 찾지 못한 채 '강대강' 대치를 거듭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은 정기국회 한 달전부터 철저한 진상 규명과 함께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장외투쟁을 벌이다 정기국회가 개회된 지 3주째인 9월23일에야 원내로 복귀했다.

민주당이 국회에 복귀한 뒤에도 각종 정치현안이 터져나오면서 국회는 파행의 연속이었다. 민주당은 지난달 8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의 편파성을 주장하며 다시 국회 의사일정을 보이콧했다.

이어 같은 달 11~13일에는 검찰 수사에 대한 외압설에 반발해 인사청문회를 제외한 모든 의사일정 참여를 중단했다. 또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대한 새누리당의 단독처리에 항의,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3일까지 국회 의사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정치력과 협상력의 부재도 '파행 국회'를 초래하는 중대한 요인 중 하나였다.

결국 지난 3일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 간의 '4자회담'이 극적으로 타결되며 예산과 예산관련 법안을 연내에 처리키로 하는 등 국회가 극적으로 정상화됐지만 회기가 거의 끝나는 바람에 올해도 예외없이 곧바로 연말 임시국회를 소집해 예산 및 주요법안을 처리하게 됐다.

문제는 예산과 쟁점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입장차가 워낙 커 12월 임시국회에서도 성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은 부동산정상화법안과 외국인투자촉진법 등 경제활성화법 통과에 주력할 계획이지만, 민주당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고소득자 과세를 강화하는 소득세법 등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의 우선처리를 주장하고 있다.

다만 정기국회 막판에 여야 합의로 국정원 개혁특위 설치를 끌어낸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 국회 선진화법 도입으로 매년 되풀이되던 '몸싸움'이 올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도 개선된 점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여야는 그간 국회 파행의 원인을 '네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새누리당 김기현 정책위의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가출한 민주당을 돌아오라고 하다가 일은 하나도 못했다"며 "민주당은 민생을 볼모로 당리당략을 취한다면 국민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모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민주당 장병완 정책위의장은 "대통령은 국회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여당인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눈치만 보면서 여당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이 탓에 철저히 정치가 실종된 정기국회가 됐다"고 반박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1년 내내 대선 선거개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면서 여야의 갈등이 유난히 심했다"며 "국민은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는데 대선 얘기만 하면서 사실상 멈춰 있었던 한심한 국회"라고 혹평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