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건이 열악해도 산불 피해를 막는 데에 가장 먼저 기여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근무합니다."

산불 감시원은 우리나라 임업 기반인 산림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그러나 산불 현장에서는 거의 맨몸으로 일한다.

재정상황이 빠듯한 지자체가 자체 예산으로 산불 감시원을 운용하다 보니 개인 안전장비가 없는 50대 산불 감시원이 불을 끄다가 연기를 마셔 숨지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11월 28일 오후 1시께 고성군 하일면 춘암리 맥점포 마을 야산에서 도로변 전봇대 합선으로 추정되는 불이 나 현장에 출동한 산불 감시원 김영록(51)씨가 진화작업 도중 쓰러졌다.

동료들은 119구급대 도착 이전에 김씨에게 인공호흡 등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이미 의식이 없었다.

김씨는 인근 삼천포 서울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오후 2시50분에 숨졌다. 사인은 연기 흡입에 따른 질식인 것으로 판명됐다.

당시 강한 바람이 불었고 급한 경사면에서 서둘러 움직이며 진화에만 신경 쓰던 김씨는 연기를 많이 마셨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급히 현장에 출동한 김씨에게 방화복이나 마스크 같은 개인 안전장비는 없었다.

현장에 출동하는 산불 감시원들에게 등짐 펌프나 불갈퀴 등의 산불 진압장비는 지급되지만 개인 안전장비는 지급되지 않는다.

김주화 고성군청 녹지공원과 산림 담당은 15일 "산불 감시원 운용에는 연간 8억원 정도가 소요되는데 빠듯한 재정상황에 개인 안전장비까지 지급하기가 쉽지 않다"며 "거의 매년 예산 지원을 요청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산불 감시원과 달리 국비와 도비 지원을 받는 시·군의 산불 전문 진화대는 최소한의 안전장비는 갖추고 현장에 출동한다.

지자체 자체 재정으로 산불 감시원을 운용하다 보니 임금도 시·군별도 제각각이다. 일당은 최저임금인 3만8천880원에서 4만5천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지난 11월 기준 경남도내 18개 시·군에서 활동하는 산불 감시원은 모두 2천160명이다.

이번에 숨진 김씨는 한 달에 3∼4일 정도만 쉬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해 1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받았다.

아내 최경순(51)씨는 겨울철 몇 개월만 일 할 수 있는 굴 까기 공장에 나가 생활비를 보탠다.

부부는 1남1녀를 두고 있는데 장애가 있는 아들은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최씨는 "추운 겨울 밖에서 고생하면서도 항상 밝게 출근하던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늘 안쓰러웠는데 눈앞이 캄캄하다"고 힘겹게 말했다.

김씨의 순직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고성군지부(지부장 최성식)는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닷새 동안 모금운동을 벌였다.

군청 직원은 물론 의회 사무과, 하이면·동해면·회화면·거류면 산불 감시원, 영오면 이장단, 민주평통 고성군협의회, 고성군 산림조합 등이 모두 835만8천원을 모았다.

최성식 지부장은 "노조원은 아니지만 우리가 아니면 도울 사람이 없다는 판단에 모금을 시작했다"며 "도움을 주신 분들의 따뜻한 온기가 유족들에게 큰 사랑으로 다가가 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화재 당시 현장에는 산불 감시원, 의용소방대, 면사무소 직원 등 40여 명이 출동해 30여분 만에 진화를 완료했다.

이들이 사력을 다해 진화작업을 벌인 결과 피해 규모는 115㎡에 그쳤다.

김씨의 동료인 이말복(61) 씨는 "여건이 좋지 않아도 산불 피해를 막는 데에 가장 먼저 기여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근무한다"며 "늘 성실하던 동료가 죽었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일면 사무소는 산불 감시원들의 건의에 따라 최근 면사무소 자체 예산으로 안전모, 마스크, 장갑, 안전유도봉 등을 마련했다.

고성군은 14개 읍·면을 대상으로 관련 개인 안전장비 수요조사를 해 지원을 서두를 계획이다. 군의 산불 감시원은 100명이 조금 넘는다.

또 김씨가 공무상 재해로 숨진 것으로 판단,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 절차를 밟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