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남긴 차명재산을 두고 벌어진 상속 소송의 항소심에서 장남 이맹희씨 측이 화해를 제안했고 삼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측은 "판결로 가리자"며 즉각 수용 의사를 보이지는 않았다.

24일 서울고법 민사14부(윤준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소송을 제기한 이씨 측 대리인은 "조정 절차를 거친 후 변론기일을 정하자"고 이 회장 측에 제안했다.

이 회장 측 대리인은 "이병철 선대 회장의 진짜 유지가 무엇이었는지 가리는 것이 재판의 목적"이라며 "소송 경위를 보면 조정은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측 대리인은 재판 직후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도 다소 상반된 입장을 언급했다.

이씨 측 대리인은 "삼성의 성장 과정에서 여러 역할을 한 이맹희씨가 최근 건강 악화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형사소송을 고려해 이번 상속소송을 화해로 풀기 원한다"며 "판결이 이 회장 측에 불리하게 나올 가능성을 고려하더라도 합의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회장 측 대리인은 "화해로 인해 선대 회장의 유지를 확인하는 취지가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한다"며 "이 재판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정통성과 원칙에 관한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원고 측 제안을 이건희 회장에게 전달해 이에 대한 의사를 전달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는 이 회장 측이 신청한 한모 삼성생명 고문이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했다.

10여년 동안 삼성생명 경리부에서 근무한 한 고문은 "삼성생명을 비롯해 그룹 관재팀과 긴밀한 관계가 있던 계열사 경리팀은 이 회장의 차명주식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차명주식 존재 사실이 공공연히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씨 측도 이를 알고 있었고, 따라서 법이 정한 제척기간 10년을 넘기고 나서 뒤늦게 상속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씨 측 대리인은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 등 그룹 임원진은 그동안 극비리에 차명 주식이 관리됐다고 말해왔다"며 "당시 경리팀 말단 직원이 차명주식의 존재와 규모를 알고 있었다는 한 고문의 증언은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내달 7일 한 차례 더 변론기일을 열고 같은달 14일 심리를 마칠 예정이다.

재판부는 "결심 이후에도 양측에 화해 의사가 있을 경우 비공개로 화해 조정기일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