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26일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떠넘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으로 기소된 김승연(61) 한화그룹 회장의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9년과 벌금 1천500억원을 구형했다. 1·2심에서와 같은 구형량이다.

서울고법 형사5부(김기정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김 회장은 지능적이고 교묘한 범행 수법을 이용해 계열사로 하여금 자신의 차명소유 회사의 빚을 갚도록 했다"며 이같이 구형했다.

검찰은 "김 회장의 범죄는 기업 투명성 확보라는 시대적 사명에 역행한다"며 "공정사회를 염원하는 국민들은 기업에도 투명·책임 경영을 원한다. 구태가 용인되어서는 안되며 준엄하게 처벌돼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 회장이 회사에 끼친 손해액이 총 3천억원이라고 설명했다.1심 재판부가 인정한 3천200억원보다는 줄어든 금액이지만 1천700여억원만 배임액으로 인정한 2심 판결에 불복하는 주장이다.

김 회장 측 변호인은 "피해액은 항소심에서 유죄가 확정된 1천393억원과 (대법원에서 재심리를 요구해) 유·무죄가 확정되지 않은 204억원"이라며 "계열사의 실손해액에 관한 검찰의 주장은 부당하다"고 맞섰다.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 피해액으로 잠정 집계된 1천597억원을 이날 오후 공탁했다. 1심 선고 후 김 회장이 공탁한 1천186억원보다 411억원 늘어난 금액이다.

변호인은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피고인이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공탁금을 내는 등 노력으로 피해액이 상당 부분 만회됐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하늘색 마스크에 환자복을 입고 누운 채로 법정에 출석했다.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침묵을 지키던 김 회장은 최후 진술에서 "그동안 애쓰신 변호사님, 검사님, 재판장님과 판사님들에게 감사하다"며 "앞으로 (한화그룹이) 좀 더 나은 기업으로 재탄생할 수 있게 선처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선고 공판은 내년 2월6일 오후 3시30분 열릴 예정이다.

앞서 김 회장은 2004~2006년 위장계열사(차명소유회사) 빚을 갚아주려고 3천200여억원대 회사 자산을 부당지출하고 계열사 주식을 가족에게 헐값에 팔아 1천41억여원의 손실을 회사에 떠넘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김 회장은 사비로 1천186억원을 공탁하고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벌금 51억원으로 감형받았다. 배임으로 인정된 액수는 1심의 3천24억원에서 1천797억원으로 줄었다.

대법원은 지난 9월 26일 일부 지급보증을 별도의 배임 행위로 본 원심 판단이 위법하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부동산 저가매각으로 인한 손해 규모 등도 다시 심리하라고 명령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