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파업이 27일로 19일째를 이어가는 가운데 노사교섭이 결렬됐다. 13일 만에 극적으로 노사가 만났지만 '수서발 KTX' 면허발급을 두고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정부는 이날 오후 늦게 법원에 신청한 법인설립 등기가 나오자 곧바로 수서발 KTX 면허를 발급했다.
28일 총파업에 들어가는 민주노총은 노정(勞政)관계를 전면 단절하고 모든 정부위원회 참가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열차운행은 5일째 76%대를 유지, 연말연시 승객 불편과 물류난이 계속됐다.
◇ 노사교섭 결렬…파국으로 치닫는 두 열차
노사는 26일 오후 4시부터 이날 오전 8시까지 진행된 마라톤 교섭에서 아무런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
최연혜 사장은 협상이 끝나고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파업을 철회하면 수서 KTX 법인의 공공성 확보와 철도산업발전을 위한 '노·사·민·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하겠다'는 진전된 대안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수서 KTX 법인 면허발급부터 중단하라'는 기존의 요구를 되풀이하면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어떠한 야합이나 명분 없는 양보와 타협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며 "노조는 철도산업발전에 대한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오늘 자정까지 돌아오지 않는 직원에 대해서는 복귀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며 파업 중인 노조원들을 향해 마지막 통첩을 내렸다.
김명환 노조위원장도 민노총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노조는 면허 발급 중단 후 노·사·민·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해 논의하자고 제시했지만, 사측은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은 동의하면서도 사회적 논의의 전제가 될 수밖에 없는 면허 발급 중단은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되풀이했다"고 밝혔다.
또 "노사교섭의 실질적 진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국토부와 국회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며 노사가 지도력을 행사하려면 노사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노조는 교섭을 계속 진행할 것을 사측에 제안했으며 실질적 진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후 국회에서는 철도파업 사태와 관련해 노사정의 대표성을 가진 인사들이 참석해 파업 이후 첫 대화를 했으나 각자 기존 입장만을 되풀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 루비콘 강 건넌 정부…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 설립
정부는 이날 철도 파업의 도화선이 된 수서 발 KTX 법인의 철도운송사업 면허를 발급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오후 10시 서울 정부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철도경쟁시대가 열렸다"며 "수서고속철도회사는 철도 혁신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앞으로 철도공사와 수서고속철도회사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국민의 사랑을 받는 건전한 회사로 거듭나고 철도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 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국토부는 면허에 대해 코레일과 5개월 정도 실무협의를 했고 영업·안전·차량·시설 등 전 분야를 검토했으며 철도사업법 등 법령이 정한 기준을 충족해 면허를 발급했다고 밝혔다.
이번 면허는 2004년 철도사업법 제정 이후 법에 따라 부여한 최초의 면허로 철도운송에 복수 운영자가 참여해 경쟁이 이뤄지게 됐다고 국토부는 설명했다.
수서에서 평택을 거쳐 부산과 목포까지 가는 수서 발 KTX는 2015년 말 개통 예정이다.
국토부는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의 발기인 대표인 코레일이 지난 12일 면허 신청서를 낸 이후 재무건전성, 안전성 등 사업계획서 검토를 미리 끝내고 대전지법이 법인 설립 등기를 내기를 기다려 왔다.
철도노조는 코레일의 자회사로 수서 발 KTX 운영회사를 세우는 것이 나중에 지분을 민간에 매각하는 민영화 전초전이라고 주장하면서 법인 설립 철회를 주장해왔다.
철도노조는 면허발급과 관련, "한밤중에 법인설립 등기를 내주고 철도사업면허까지 일사천리로 처리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민주노총도 28일 1차 총파업에 이어 다음 달 9일과 16일 각각 2·3차 총파업을 결의하고 모든 조직을 총파업 투쟁본부로 전환하기로 했다. 노정관계 전면 단절과 정부위원회 불참도 선언했다.
법원은 노조가 지난 11일 낸 코레일 임시 이사회의 법인 설립·출자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코레일은 지난 26일 서울 서부지방법원에 노조의 예금, 채권, 부동산 등을 가압류 신청했다. 가압류 신청 금액은 2009년 파업 추정 손실액 39억원과 이번 파업 추정 손실액 77억원을 합쳐 116억원이다.
◇ 5일째 열차 운행률 76.1%
이날 열차 운행은 5일째 평상시의 76.1%로 운행됐다.
차종별로는 KTX는 73.6%,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는 각각 56, 61.5%, 수도권 전동열차는 85.7%로 운행했다.
화물열차는 평상시의 30.1%를 유지했다.
주말인 28일에는 평시 대비 82.1%로 운행된다.
KTX는 74.1%, 새마을호 57.7%, 무궁화호 62.2%, 수도권 전동열차는 95%로 운행된다.
◇ 조계종 "철도사태 사회적 협약으로 해결"
조계종 '철도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는 이날 국민통합적 대화기구를 설치해 입법에 준하는 사회적 협약 방식으로 철도사태를 풀자고 제안했다.
도법 특별위원회 조계종 화쟁위원장은 "사회적 협약을 마련하는 동안 정부는 수서 발 KTX 법인 면허 발급을 잠시 미루고 노조는 파업을 잠정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노사가 이미 동의하는 사회적 대화의 장을 마련하자"며 "철도노조, 코레일, 국토교통부, 여야, 종교인, 시민사회 등이 나서 '철도문제의 국민통합적 해결을 위한 대화기구'를 즉각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오늘 중으로 긴급대화를 열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 노사정이 조건 없이 만나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대화하자"고 말했다.
◇ 수배 노조원 2명 민주당에 'SOS'
경찰의 수배를 받는 철도노조 최은철 사무처장을 포함한 철도 노조원 2명이 이날 오후 여의도 민주당사에 진입했다.
이들은 민주당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 특별위원장인 설 훈 의원과 최원식 의원, 이용득 최고위원을 잇따라 면담하고 신변보호와 함께 철도파업 사태 해결을 위한 정치권의 협조를 요청했다.
최 사무처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가 책임지지 못하면 지금의 사태는 파국을 면할 길이 없다고 생각, 국회가 책임 있게 나서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오게 됐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들의 신변을 보호하는 한편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