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오른쪽)이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염리동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열린 2014년 제1회 임시이사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열릴 이사회에서는 국내외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흡연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이른바 '담배소송'을 의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당신들이 만든 담배를 피워 많은 국민이 암에 걸렸고, 이 진료비가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출됐으니 물어내라"

건강보험공단이 이 같은 취지로 24일 이사회를 통해 '담배 소송'을 의결했다. 공단은 지금까지 축적한 건강보험 진료비 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최대 3천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규모와 승소를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개인이 기호에 따라 선택하는 제품인데다 담배와 암 발병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까지 입증해야하기 때문에, 김종대 공단 이사장의 '의욕'과 '자신'에도 불구하고, 소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까지에는 많은 진통이 예상되는 등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 공단 "소세포암·편평세포암만 따져도 130억~3천억원 진료비 청구 가능"

그렇다면 건강보험공단이 담배사에 진료비 손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믿는 논리적 근거는 무엇일까.

우선 공단은 이미 국내 법원이 일부 암과 흡연의 인과 관계를 인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된 개인 담배소송에서 지난 2011년 2월 고등법원 선고 내용을 보면 "폐암 중 소세포암과 후두암 중 편평세포암은 흡연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적어도 소세포암과 편평세포암 관련 진료비의 전부 또는 일부는 담배사로부터 받아낼 수 있다는 게 사전 법률 검토를 통해 내린 공단의 결론이다.

국립암센터 중앙암등록본부의 자료에 따르면 2003~2012년 소세포암 및 편평세포암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모두 2만4천804명이고,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 이들의 진료비는 3천326억원에 이른다.

소송에 활용될 또 다른 자료는 1992년부터 2012년까지의 '한국인 암 예방 연구(KCPS)' 결과. 이 조사는 1992~1999년 일반 건강검진에 참여한 30세 이상 공무원·사립학교 교직원 및 피부양자 238만명의 질병 정보를 길게는 2012년까지 19년동안 추적·관찰한 것이다.

▲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염리동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2014년 제1회 임시이사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는 국내외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흡연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이른바 '담배소송'을 의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이 KCPS 조사에서 1992~1999년 사이 담배를 피운다고 답한 사람 가운데 중앙암등록본부 자료를 통해 소세포암 및 편평세포암에 걸린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1천842명, 공단이 부담한 이들의 진료비는 모두 251억원으로 집계됐다.

더 범위를 좁혀 1992년 이후 암 발생시점 이전까지 흡연경력이 20년이 넘고(KCPS 조사), 소세포암 및 편평세포암이 발병(중앙암등록 자료)한 환자만 따지면 인원과 공단 부담 진료비 규모는 835명, 130억원 정도이다.

결국 현재 건강보험공단이 중앙암등록 통계와 KCPS 조사 결과를 조합, 검토하고 있는 담배소송가액이 적게는 130억원, 많게는 3천300여억원에 이른다는 얘기이다.

김종대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이런 통계 분석을 바탕으로 "공단은 담배소송을 위해 오랜 기간 연구하고, 빅데이터를 활용해 담배 폐해의 객관적 증거를 확보해왔다"고 소송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공단은 이미 지난해부터 실제로 배금자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들과 함께 여러 차례 포럼 등의 모임을 열고 소송 당위성과 승소 가능성 등을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 담배-암 직접 인과관계, 담배사 의도·위법성, 흡연자 개인 선택 등 쟁점

그러나 비슷한 국내외 소송 사례로 미뤄, 여러 관련 의학 논문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담배가 폐암 등 질병의 발생 확률을 높인다' 정도의 통계 근거만으로 법정에서 담배회사의 손해 배상까지 끌어 내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보다 치밀하고 구체적인 피해 입증 과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먼저 법정 다툼에서는 어떤 사람이 암에 걸렸을 때, 그 암이 결정적으로 담배 때문에 생겼다는 직접적 '인과관계'를 밝혀내야만 한다.

아울러 당초 제품으로서 담배가 사람이 즐길 수 없을 만큼 결함이 있는 것인지, 담배회사가 의도적으로 암 발생 위험을 알고도 법까지 어겨가며 담배를 만들어 판 것인지 '의도성', '위법성' 등도 따져야한다.

더구나 담배회사들과 그 변호인단은 "담배가 기호식품인 만큼 개인의 선택에 따라 피운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방어에 나설 개연성이 크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오랜기간 담배를 피우다가 폐암에 걸린 환자나 그 가족이 국가와 KT&G(옛 한국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4건의 담배 소송에서, 1·2심을 통틀어 아직 단 한 건도 승소한 사례가 없는 것도 이 같은 난관을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담배협회 관계자는 "지금까지 국내외 법원은 담배사가 제조한 담배에 결함이 없고, 고의와 과실에 따른 위법성도 없다고 판결했다"며 "원고측이 주장하는 인과관계는 흡연자의 생활습관, 직업, 식습관, 가정환경, 유전적 요인 등의 모호한 관계 때문에 성립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강보험공단의 지도·감독 기관이자 담배·흡연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조차 "기본적으로 담배 소송에 찬성하지만, 소송에는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되는 등 막대한 비용이 드는만큼 확실하게 승소할 수 있는 증빙자료 등을 제시해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처럼 '책임 입증'의 어려움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