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원대 기업범죄를 저지른 김승연(62) 한화그룹 회장과 구자원(79) LIG그룹 회장이 11일 나란히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는 과거 법원이 재판에 넘겨진 대기업 총수에 흔히 선고해 '재벌 양형공식'이라고 비판받던 양형이다.
그룹 총수 두 명이 공교롭게 동시에 같은 형을 선고받아 비슷한 논란이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승연 회장과 구자원 회장 모두 1심에서 법정구속된 뒤 1천억원 이상의 사비를 털거나 핵심 계열사 지분을 포기하면서 피해 변제를 위해 노력한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고법 형사5부(김기정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2시와 3시30분 구자원 회장과 김승연 회장에게 연달아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이 구 회장에게 징역 5년, 김 회장에게 징역 9년을 각각 구형한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재판부는 특히 김 회장에 대한 양형 이유를 밝히면서 "그동안 나름대로 경제 건설에 이바지한 공로를 참작했다"고 언급했다.
'경제발전 기여 공로', '경영공백',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은 과거 재벌 총수의 판결문에 심심찮게 등장했으나 2009년 7월 양형기준이 시행된 후 자취를 감춘 참작 사유들이다.
1심도 김 회장에 대해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횡령·배임죄에 관해 정한 양형기준을 적용해 권고형 범위를 철저히 준수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날 두 그룹 총수가 선고받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은 한 때 재벌 양형공식으로 불렸다. 많은 기업 총수들이 비슷한 형을 받아서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009년 8월 배임·조세포탈 혐의로 '3년에 5년'을 선고받고 139일만에 사면됐다.
SK글로벌 분식회계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08년 5월,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그해 6월 각각 같은 형을 선고받고 모두 사면되기도 했다.
한 중견 변호사는 "최근 경제민주화 담론이 경제살리기로 바뀌면서 법원 양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며 "현재 재판을 받는 다른 재벌 총수 양형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승연 회장과 구자원 회장이 재판을 받던 도중 자신의 범행과 관련한 피해를 변제하기 위해 애쓴 점을 감안하면 양형이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 회장은 업무상 배임으로 피해를 본 계열사를 위해 1천597억원을 공탁했다. 경영권 방어에 필수적인 자기 주식을 담보로 맡기고 빌린 돈을 공탁해 실질적인 피해 전액을 회복했다.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에 반성과 속죄의 의미로 거액의 사재를 출연해 사회복지재단이나 장학재단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다른 재벌 총수의 전례에서 한 발짝 더 나간 것이다.
구 회장도 항소심에서 그룹 핵심 계열사인 LIG손해보험 주식을 전부 매각하기로 하고 피해자 전원과 합의했다. 그가 두 아들에 비해 범행에 적게 관여한 점도 고려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LIG그룹 사건의 경우 장남 구본상 부회장이 여전히 실형이고 1심에서 무죄였던 차남 구본엽 전 부사장마저 법정구속돼 양형이 약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