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이산가족 박종분(80·여)씨는 버스에 오른 북쪽 오빠 박종성(88)씨가 차창 밖으로 내민 손을 잡고 통곡했다.
6·25 전쟁 통에 헤어져 죽은 줄 알고 제사까지 지냈던 오빠였다. 그런 오빠를 살아서 만난 꿈 같은 시간이 이제 끝나가고 있었다.
오빠 종성씨는 종분씨를 비롯한 여동생 3명에게 "동생들아, 건강해라. 건강하면 또 만난다"고 달래며 눈물을 흘렸다.
3년4개월 만에 재개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25일 종료됐다.
이산가족 2차 상봉 마지막날인 25일 이산가족들은 금강산호텔에서 약 1시간 동안 '작별 상봉'을 한 데 이어 호텔 앞에서 또다시 눈물바다를 이뤘다.
이산가족들은 작별 상봉이 10분 후면 끝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무정하게 흐르는 시간을 야속해 하며 곳곳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북쪽의 김태운(79)씨는 남쪽 언니 사분 씨를 끌어안고 "아이고, 우리 언니, 아이고, 우리 언니"라고 외치며 통곡했다.
북쪽 남궁렬(87)씨는 이제 머리가 하얗게 샌 남쪽 딸 봉녀 씨에게 "조금만 일찍 만났더라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쟁 통에 헤어지던 날 한 살배기였던 딸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는 듯했다.
남쪽 조도순씨는 북쪽 오빠 조원제(83)씨를 꼭 끌어안은 뒤 기약 없이 떠나는 오빠에게 큰절을 올렸다.
'고향의 봄', '아리랑'같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민족의 정서가 밴 노래를 목놓아 부르는 이산가족들도 많았다.
김두인(78)씨는 작별 상봉 후 떠나는 버스에 탄 북측 형 김화인(85)씨에게 "형님, 이제 마지막"이라며 "하늘에서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사랑한다"라며 작별 인사를 했다.
휠체어를 타고 온 남쪽 박금화 씨는 북쪽 언니 계화(82) 씨의 손을 잡기 위해 기어이 두 발을 딛고 섰다. 금화 씨는 "언니, 잘 가세요. 아버지도 엄마도 기뻐하실 거야"라며 울먹였다.
이산가족도, 안내원도, 남쪽도, 북쪽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북한 적십자회 배지를 단 안내원은 "이럴 때 눈물 안 나면 조선사람 아니지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남측 상봉 단장인 김종섭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는 이날 헤어지기 전에 북측 단장인 리충복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부위원장에게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리 부위원장은 "아직 포기하지 말고"라며 "북남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켜야 한다"라고 화답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