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고를 비관한 모녀 셋이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한 채 방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동반자살했다. 27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후 9시 20분께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박모(60·여)씨와 그의 두 딸 A(35)씨, B(32)씨가 숨진 채 발견돼 집주인 임모(73)씨가 경찰에 신고했다. 사진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이라는 메모와 함께 남긴 현금봉투./서울지방경찰청 제공

지난 26일 송파구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의 비극은 사회안전망의 한계와 복지 사각지대를 드러낸 안타까운 사건이다.

28일 송파구 등에 따르면 숨진 박모(60)씨 모녀는 질병 상태로 수입도 끊겼지만, 국가와 자치단체가 구축한 어떤 사회보장체계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박씨는 한 달 전 다쳐 일을 그만둬서 수입이 끊겼고, 30대인 두 딸은 신용불량 상태였으나 그 어느 곳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했다.

무엇보다 세 모녀가 가장 기본적인 복지제도인 기초생활보장제도나 의료급여제도 대상에 들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는 지적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저소득층에 최저생계비 수준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복지제도이고, 의료급여는 기초수급자와 차상위층을 위한 의료보장제도이지만 이들에게 먼 나라 얘기였다.

특히 큰 딸은 고혈압과 당뇨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병원비 부담으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순화 송파구 복지정책과장은 "동주민센터에서 기초수급자 발굴을 하는데 박씨 모녀가 직접 신청을 하지 않았고 주변에서 이들에게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한 차례도 들어 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숨진 박씨가 실직 후 실업급여를 받았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홍 과장은 "이들이 복지제도에 손을 벌리지 않고 스스로 힘으로 생계를 꾸렸기 때문에 숨지기 전까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긴급지원 복지제도 역시 박씨 모녀를 챙기지 못했다.

긴급지원은 연락이 두절된 가족의 소득 등으로 인해 기초수급자 자격에 벗어나거나 갑작스러운 실직 등으로 생활고에 빠진 취약계층을 발굴해 지원하는 복지제도이지만 송파구는 세 모녀의 존재를 몰랐다.

송파구는 가스나 전기요금 체납 내역을 관련 기관으로부터 전달받아 도움이 필요한 가구를 먼저 찾아내 지원에 연계해왔지만 세 모녀가 지금까지 한 차례도 가스·전기요금을 체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세 모녀는 장애인, 노인, 한 부모 가정 등 전형적인 취약계층으로도 분류되지 않았던 탓에 관련 복지 혜택을 못 받았고 이웃과 교류도 거의 없어 어려운 사정이 주변에 알려지지 않았다.

정경혜 송파구 희망복지지원팀장은 "박씨 모녀가 외부에 자신들의 처지를 전혀 알리지 않아 주변에서도 잘 몰랐던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박씨 유족은 송파구청이 연계한 장례식 후원도 사양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팀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초수급자 신청이나 긴급지원제도를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려고 한다"며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내는 방법을 어떻게 보완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종필 서울시 복지건강실장은 "스스로 지원을 요청하지 않는 분들을 복지에 연계하는 방안을 찾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