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수립·집행규정 승인부터
지방세로 세금면제까지 추진
자치단체 운영권한 거의 없어
"개선 안하면 종속 가속화"


"쓰레기 봉투값 하나도 지자체가 결정할 수 없는 구조죠."

인천재정포럼에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재영 인천대 교수의 말이다. 쓰레기 봉투 가격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물가대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정부는 '물가안정'을 강조하며 공공요금 인상 억제 방침을 내놓는다. 심의위원회는 이 같은 정부 방침에 역행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만큼 지자체의 재정운영 구조가 정부에 예속돼 있다는 것이다.

■ 자율성 없는 '껍데기' 지자체

지자체는 예산 수립과 집행, 사후관리는 물론 지방재정 악화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지방채까지 중앙정부의 직·간접적인 간섭을 받는 구조다.

중앙정부는 지자체가 한 해 예산을 수립하기 전 '예산편성운영기준 및 기금운용계획 수립기준'을 시달한다. 지자체가 이를 위반하면 행정적 제재를 받는다.

예산편성이 끝나면 '세출운용기준'을 시달한다. 예산의 집행 대상과 절차, 방법까지 규정하고 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중앙에서 지자체에 내려주는 교부세를 감액해 오히려 재정난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예산 편성과 집행 과정에 대한 사후관리도 각종 감사 시스템을 통해 일일이 스크린한다.

지자체가 빚(지방채 발행)을 내기 위해서도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부가 지방채 자율발행 가능지수 등을 평가해 해당 연도의 발행 한도액을 정한다.

인천의 경우 올해 지방채 발행 한도액은 139억원에 불과하다. 한도액을 벗어나는 규모의 지방채 역시 정부가 승인한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사·공단이 발행하는 공사채의 승인권도 정부에 있다. 지방재정 운영을 위한 권한 대부분이 정부에 있다는 것이다.

김재영 인천대 교수는 "현행 제도 아래서 재정운영 분야에 대한 지자체의 자율성은 거의 없다"며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파산제 도입을 통해)지자체에 대해 책임만 강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재정위기 부추기는 중앙정부

최근 기준으로 국내 지자체의 부채는 47조7천300억원 규모다. 공사·공단 등 지방공기업 부채 54조4천300억원을 합하면 100조원을 넘어선다. 이처럼 지방재정이 악화한 데에는 중앙정부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복지비 부담 전가가 대표적이다. 영유아 보육사업은 주요 대선공약임에도 지자체의 부담률이 51%나 된다. 중앙정부 부담분 49%보다도 높다.

최근 5년간 영유아 보육료의 지자체 부담은 4.5배 급증했다는 분석이 있다. 인천의 경우 사회복지비 부담비중은 같은 기간 12.3%에서 22.7%로 높아진 반면, 자체 사업 예산비중은 49.7%에서 42.3%로 낮아졌다. 정부의 요구에 따라 지자체의 재정운영 상황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부동산경기 활성화를 위한 취득세 감면 조치를 발표했다. 취득세는 지방세로 구분된다. 지자체의 주요 세원인 지방세를 정부가 마음대로 흔든다는 지적이 있었다.

최근엔 임대주택사업자에 대한 취득세와 재산세 등 지방세의 면제와 감면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지방세를 '쥐락펴락'하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지난 2009년 경기부양을 위해 지방채 발행을 권장하기도 했다. 인천은 이때 8천400억원 규모의 지방채를 발행할 수 있었다. '없던 사업도 만들어 지방채를 발행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빚을 내라고 권유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그 책임을 지방에만 묻겠다는 태도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게 지방행정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 지방자치 전문가는 "재정 분야에 대한 지자체의 자율성이 거의 없는 현재 상태에서의 파산제 도입은 지자체의 정부 종속현상을 더욱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며 "파산제를 도입하더라도 정부와 지자체 간 재원배분 비중이 대등한 일본처럼 재정운영에 대한 지자체의 자율성을 확보한 뒤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이현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