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건전성 강화도 좋지만
세금징수기준 등 美와 달리
재정 운영 자율성 보장안돼
전문가들 "교각살우 우려"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의 방만한 재정 운영을 제어하겠다며 올해부터 도입을 추진하고 나선 '지자체 파산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지자체의 재정 위기를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큼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방정부의 탓으로만 돌린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성급한 지자체 파산제 도입은 자칫 소의 뿔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가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3면

안전행정부는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지자체 파산제'의 연내 도입을 공식화한 데 이어, 지난 3일에는 전국 17개 시·도 기획실장회의를 소집, 이 같은 방침을 전달했다. 지자체 파산제 추진 이유는 지자체의 재정책임성과 재정운영의 건전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안행부는 이를 위해 파산 자치단체의 지정기준, 절차, 회생 방법 등을 공론화하고, 연말까지 파산제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지방재정 분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방재정 위기의 책임을 지자체로 떠넘기는 것이라며 '어불성설'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자체 파산제 도입 방침에 가장 대표적인 파산 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오렌지 카운티다. 248만여명의 인구가 살고 있던 오렌지 카운티는 1994년 재무담당 공무원의 투기 실패로 인해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공무원 2천명이 줄고, 시영버스, 복지시설, 출장소 등 사회복지서비스 지출도 대폭 줄었다. 공공요금 인상, 지방세율 증세 등 조치도 있었다.

미국의 재정시스템은 지자체가 어떤 세금을 걷을지, 세금을 얼마나 걷을지, 세금을 어떻게 쓸지 등을 직접 결정하도록 하는 구조다.

재정운영의 자율성이 철저히 보장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정운영이 잘못됐을 때 파산이라는 책임이 따르는 것은 당연시된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미국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자체는 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세금을 걷을 수밖에 없다. 세금편성과 집행도 정부로부터 제약을 받는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재정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에서 미국식 파산제 도입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조태제 한양대 교수는 "미국의 경우 지자체가 100% 재정운영의 자율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책임도 물을 수 있지만 우리는 여기에 해당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국내 지자체의 재정위기가 지자체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방재정 건전화를 위해 파산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파산이 선고된 지자체는 투자유치가 어려워지고, 시민의 역외이주 현상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른 세수 감소로 파산이 선고된 지자체의 주민서비스는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이현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