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사거리부터 송파구청 사거리 1.2㎞ 사이에서 연쇄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
9대의 차량을 연달아 들이받은 시내버스의 '광란 질주'로 버스 기사 염모(60)씨와 승객 이모(20)씨 등 2명이 숨지고 장모(18·여)양은 뇌사상태에 빠지는 등 17명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장양의 가족들은 장양의 장기를 기증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씨와 장양, 경상을 입은 한모(19)씨는 올해 같은 학교에 입학한 새내기로, 학과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하고 나서 귀갓길에 같은 버스를 탔다가 변을 당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 3분간 1.2㎞ 질주…숨 막혔던 사고 상황
20일 경찰 등에 따르면 염씨가 운전하던 3318번 버스는 택시 3대를 들이받고도 멈추지 않고 1천190m를 달리다 또다시 승용차 5대와 충돌한 뒤 신호대기 중이던 버스를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전날 오후 10시께 강동 공영차고지에서 출발한 3318번 버스는 오후 11시 43분께송파구 석촌호수 사거리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 3대를 연이어 추돌했다.
버스는 추돌 후에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직진, 잠실역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은 뒤 송파구청 사거리까지 내달렸다.
버스는 본래 잠실역에서 직진해 다음 교차로에서 우회전하기로 돼 있었다.
버스는 오후 11시 46분께 송파구청 사거리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옆 차로의 택시와 승용차 등 차량 5대를 가볍게 스치고 앞에 있던 30-1번 버스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사고 직후 버스는 차체 앞쪽이 완전히 찌그러진 모습이었고 깨진 유리창 파편은차로와 인도를 뒤덮었다.
당시 사고를 목격한 한 시민은 "'꽝'하는 소리가 크게 나서 폭발이라도 난 줄 알았다"며 "브레이크 고장이 아니고는 저렇게 달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3318번에 타고 있었던 승객들은 1차 추돌 후 "차를 세우라"고 소리쳤지만 버스는 멈추지 않았다.
승객 강모(17)군은 "승객들이 차를 세우라고 소리 질렀고, 그 중 한 명은 염씨에게 다가가서 멈추라고 했지만 계속 달렸다"며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대학 새내기 신입생 환영회 다녀오다가 참변… 장기기증 논의
30-1번 버스에는 올해 대학 같은 과에 입학한 새내기 세명이 함께 타고 있다가 사고를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씨와 한씨, 장양은 올해 동서울대학 모 학과에 입학한 동기들이었다.
이들은 19일 오후 8시30분부터 대학 근처인 성남의 모 호프집에서 열린 학과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했으며, 11시께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가려고 같은 버스를 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과 선배 A씨는 "신입생 환영회는 교수들은 참석하지 않고 선후배만 모여 상견례 하는 자리였다"며 "후배 세명이 먼저 집에 가겠다며 일어나 호프집을 나갔는데 사고를 당했다"며 안타까워했다.
특히 이씨와 장양은 추돌사고 당시 직접적인 충격을 받은 버스의 맨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 큰 변을 당했다.
한씨는 다행히 큰 화를 면해 경상에 그쳤다.
머리 등을 심각하게 다친 장양은 결국 뇌사상태에 빠졌다.
가족들은 장양의 장기를 기증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양의 삼촌은 "조카는 사고 당시 목뼈와 뇌를 크게 다쳐 병원 도착 후 수술도 못하고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며 "조카가 장기기증을 서약한 적은 없지만 병원과 상의해 이식 가능한 장기가 있는지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 사고 원인은 '오리무중'
버스가 한 차례 사고 뒤에도 멈추지 않고 노선을 이탈해 달린 점, 차량 대신 가로수 등을 들이받는 '방어운전'을 하지 않고 연이어 추돌사고를 일으킨 점 등을 두고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사고 당시 운전자 염씨의 건강 문제, 음주, 브레이크 파열이나 엔진 이상 등 차체 결함 등의 개연성을 배제하지 않고 두루 조사할 방침이다. 다만 3318번 버스를 운행하는 송파상운 관계자는 "사고 차량은 일 년밖에 안 된새 버스로, 지난 18일 한 정기점검에서도 문제가 없었다"며 차체 결함 가능성을 부인했다.
운전자 염씨는 택시기사로 일하다가 1994년부터 대형버스 운전을 시작해 2010년8월 송파상운에 입사했다. 염씨는 입사 이후 한 번도 사고를 낸 적이 없었다고 회사측은 전했다.
염씨는 평소 마라톤 대회에 참여해 완주할 정도로 건강했고 지난해 10월 신체검사에서도 지병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과 동료들은 염씨에게 정신병력은 없었으며 평상시 건강에 문제를 느낀 적이 없다고 전했다.
염씨의 여동생 A씨(56)씨는 "시신을 확인했을 때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 발목과 발 등에 붕대가 감겨 있었고 무릎에 큰 상처도 있었다"며 "마지막까지 브레이크를 잡으려고 노력한 흔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3318번 버스 승객 김모(43)씨는 "염씨가 1차 사고 이후 '아!아!' 하고 계속 소리를 지르고 일부러 비틀비틀 운전해 속도를 줄이려고 했다"며 "염씨가 브레이크를 잡으려고 최대한 노력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21일 차체와 블랙박스 영상 등의 분석을 국과수에 의뢰하고 염씨의 시신을 부검할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