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의 2억원 짜리 자가 연립주택에 사는 가구는 지방세인 재산세를 부담한다. 그러나 강남의 보증금 20억원 짜리 전셋집에 사는 무주택자는 이를 내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넉넉한 재정 덕에 편의 서비스를 많이 제공되는 지역에 사는 '부자'는 전세 또는 월세 주택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지방세는 되려 덜 내는 셈이다.

이런 형평에 맞지 않는 재산세 과세제도를 보완하려는 목적으로 영국·프랑스식 주거세를 도입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26일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전국 자치단체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지방세연구원의 이선화 연구위원은 최근 열린 한국지방재정학회에서 주거세 개념과 도입방안을 국내 처음으로 발표했다.

학회에서 공개된 '주거기반 과세의 세수효과와 조세기능 평가' 보고서를 보면 주거세는 개념적으로 소유한 주택의 가격이 아니라 사는 주택의 '주거 가치' 또는 '임대 가치'를 기준으로 매기는 지방세다.

정부가 매년 주택에 대해 재산세 부과기준인 과세표준을 제시하듯, 주거세 역시 정부가 각 주택의 임대가치를 평가해 과세표준을 제시하고 그에 맞춰 거주자에게 부과하는 방식이다.

주거세는 주택 소유 여부에 관계가 없어서 강북의 2억원짜리 연립 보유자는 세금을 아예 물지 않거나 기본적인 액수만 부담하게 된다. 반대로 보증금 10억짜리 전셋집이나 월임대료 300만원짜리 월셋집 거주자에게는 '무주택'이어도 더 많은 주거세가 부과된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지난 2006년 이래 중·고소득층의 자가 보유율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고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주택을 꼭 보유해야 한다'는 인식이 급격히 낮아지는 추세다.

이에 따라 고가 전·월세에도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이런 변화와 요구를 반영한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 지방세연구원이 낸 주거세는 첫 고가 전·월세의 과세 방안이라고 이선화 연구원은 전했다.

이 연구원은 "주거세는 재산세와는 별개로 주거환경에서 주어지는 편익의 정도에 따라 매기는 지방세의 개념으로 보면 된다"며 "현재 각 개인에게 정액 부과되는 주민세를 주거세로 대체하는 방안을 이번 연구에서 제시했다"고 말했다.

상세한 주거세 도입방안은 한국지방재정연구원의 보고서 '주거기반 과세체계의 도입방안에 대한 연구'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