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찮으신 어머니를 한국에서 모시고 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군 복무를 피하려고 외국에 나가 현지 시민권을 따고 돌아온 30대 남성이 병역을 기피한 죄로 한국에서 추방될 상황에 처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노모를 모셔야 한다며 선처를 구했지만 법원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죄과를 따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1998년 스물한 살이던 이모(37)씨는 병무청에 국외여행 허가 신청을 냈다.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오기 위해서라는 설명이었다. 징집 대상이긴 했지만 병무청은 이씨에게 2년의 기간을 내줬다.

하지만 이씨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10년이 넘도록 외국에 머물렀다. 2011년에는 캐나다에서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외국인 신분으로 귀국한 이씨는 병역 의무에서 벗어났지만, 병무청의 명령을 어기고 입대를 피했던 과거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검찰이 병역법 위반 혐의로 이씨를 기소한 데 이어 1심 법원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것이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외국인을 추방하도록 정한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형이 확정되면 이씨는 해외로 쫓겨나게 된다.

항소한 이씨는 2심에서 가족과 함께 국내에 머물 수 있도록 선고를 유예해 달라고 재판부에 간청했다. 최근 결혼한 한국인 아내와 국내에서 살기로 했고 어머니가 수술로 건강이 악화해 부양이 필요하다는 점도 고려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권리는 의무를 수반해야 한다"며 이씨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부(성수제 부장판사)는 이씨에게 원심처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병역의 의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리는 여러 혜택과 권리에 대응하는 의무"라며 "이를 기피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씨의 범행은 새로운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매우 높다"며 "집행유예 판결이 확정되면 현행법에 의해 강제퇴거될 우려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씨의 변론에서 나타난 양형 조건을 보면 원심의 형이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