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변하는 아버지 모습은 감당하기 어려운 공포였습니다"

아버지가 법적인 성별을 여성으로 바꾸겠다면서 자필 동의서를 요구하자 아들이 이를 말려달라며 법원에 간곡히 호소했다.

가족의 기구한 운명은 십수년 전 시작됐다.

대기업에 다니던 유부남 A씨는 종종 화장을 하고 여성복을 입었다. 그는 부인과 갈등 끝에 이혼했다. 재산을 다 줄테니 어린 아들을 맡아달라고 부인에게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아들과 같이 살 수밖에 없었다.

아들 B씨는 자라면서 아버지가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가슴이 생기고 성기가 없어졌다. 목소리가 변하고 얼굴마저 달라졌다. 그래도 도망칠 수 없었다. 의지할 사람이 A씨뿐이었다.

10년쯤 지나고서 결국 B씨 어머니가 나섰다. 그는 이혼 당시 재산을 다 주겠다는 남편 말을 믿지 못했다. 본인도 경제적 능력이 없는 통에 양육을 포기했다. 하지만 방치된 아들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B씨가 어머니와 살게 되면서 세 사람은 각자 삶을 찾은 듯했다. 그런데 A씨가 성년이 된 B씨에게 서류 한 장을 보낸 뒤 다시 갈등이 불거졌다. 성별 정정에 동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A씨의 성별 정정 신청에 법원은 가족의 동의 여부를 물었다. 동의한 가족은 거의 없었다. 특히 어린 시절을 공포와 불안 속에서 지낸 B씨는 오히려 아버지를 말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아버지가 낯선 남자를 집으로 데려와 잠을 잤고, 저에게 집은 쉴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B씨는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을 '피해자'라 지칭했다. 아울러 아버지 성별이 바뀔 경우 가족관계등록부상 부모가 모두 여성으로 기재돼 앞으로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했다.

성소수자의 행복을 우선할 것이냐 부모로서의 책임을 강조할 것이냐 등 가치 판단은 재판부 몫으로 남았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혼인 중이거나 미성년자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허가할 수 없다고 2011년 9월 판결한 바 있다.

당시 박시환·김지형·전수안 대법관은 "다수 의견은 소수자인 성전환자도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권리와 행복을 누려야 한다는 기본권을 외면한 것이어서 동의할 수 없다"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A씨 사건의 경우 당사자가 이혼해 혼인 중이 아니고 자녀도 미성년자 시기를 벗어나 대법원과 다르게 판단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인천지법 가사5단독 이내주 부장판사는 A씨가 낸 등록부 정정 신청을 기각했다고 3일 밝혔다. 성별 정정에 극구 반대하는 가족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법원 관계자는 "A씨 모친이 신청 취지에 동의하지 않았고 전처와 아들도 반대 의견을 밝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며 "A씨가 불복할 경우 기한 없이 항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B씨 대리인은 "결혼해서 자녀를 낳은 트렌스젠더는 매우 드물다"며 "재판부가 고심 끝에 B씨의 호소에 귀 기울이기로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