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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속에 방치된 4남매가 집근처 가게에서 끼니를 때우기 위해 라면 등을 외상으로 구입한 외상장부. /박경호기자 |
외상라면·과자로 끼니… 7살 막내는 기저귀 차
학교도움 거절한 엄마… 외출땐 깔끔 '두 얼굴'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아온 4남매는 7년 전 이사온 뒤 줄곧 이런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부모의 방치 속에서 생활한 이 기간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모두 심각하게 병들어갔다.
어머니 A(39)씨를 상담한 아동보호기관 담당자는 "A씨가 이웃의 도움도 철저히 거부하면서 고립된 생활을 했다"고 전했다. 지방에서 직장을 다니며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들렀다는 아이들의 아빠 B(44)씨는 이 담당자와의 통화에서 "매번 아이 엄마에게 집안을 청소하라고 시켰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남매의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부모가 정상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여느 평범한 가정으로 보였지만, 실제 집안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 몸과 마음이 병든 4남매
이웃 주민들은 큰아들 C(17)군이 자라면서 점점 이상해졌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C군을 지켜봤지만 혼자서 동생들을 키울 정도로 의젓했다"고 기억하는 주민 홍모(50·여)씨는 "쓰레기가 가득한 생활에 묻혀 지금은 자포자기한 모습으로 변한 것 같다"고 전했다.
홍씨는 또 "4년 전까지 교회를 다녔는데 '내 인생은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극단적인 표현을 자주 했다는 말을 교회 사람들에게 들었다"며 "어린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고 안타까워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작은 아들 D(13)군은 현재 특수학급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학교 관계자는 "D군의 학습 능력은 초등학교 1~2학년 수준 정도"라고 설명했다.
오빠와 함께 이 학교에 같이 다니는 E(9)양도 특수학급으로 옮기는 절차를 밟고 있으며 또래 아이들보다 매우 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E양의 담임선생님은 "아직 한글도 완전히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학습 능력에서 큰 차이가 난다"며 "우리 반(30명) 아이들 중에 2번째로 작고, 몸무게도 제일 적다"고 말했다.
이웃 주민들은 막내인 F(7)양의 경우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고 전했다. 체구도 너무 작아 7살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윤모(53)씨는 "둘째 아이가 가끔 가게에 와서 기저귀를 구입해 갔다"고 귀띔했다.
부모들의 방치 속에 아이들은 라면과 과자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이 자주 외상을 했다는 슈퍼마켓의 장부에는 라면과 과자를 구입한 기록이 가득했다.
아동보호기관 관계자들은 4남매가 지금의 환경에 익숙해져 현재 처한 상황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고 자라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B군은 아동보호기관과의 상담에서 "그동안 별 어려움 없이 생활했기 때문에 치우지 않고 지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동보호기관 관계자는 "아동 학대나 방치의 가장 무서운 점은 아이들이 커서도 부모의 모습과 똑같이 생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라며 "아이들을 대상으로 심리 치료와 상담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외부 도움을 철저히 거부한 엄마
D군과 E양이 다니는 학교 관계자들은 A씨가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이들을 집안에 가둬 키웠다고 말했다.
학교 관계자는 "D군이 날씨가 추운데도 얇은 옷만 입고 와 외투를 사서 입혀 집으로 보냈더니 다음날 학교에 항의 전화가 걸려왔다"며 "가정 형편이 어려우면 도움을 주기 위해 전화도 드리고 집에도 찾아갔지만 거부당했다"고 했다.
이웃들도 A씨가 주위의 도움을 거절하고, 외부인들의 출입을 극도로 꺼려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A씨와 같은 교회를 다녔던 서모(53)씨는 "4년 전에 아이들 어머니가 집을 치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인들과 함께 집을 청소해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A씨가 화만 버럭 내고 거부했다"고 전했다.
A씨의 집에 우유를 배달했던 김모(46·여)씨도 "(A씨의)집안을 잠깐 본 적이 있는데 너무 지저분해서 깜짝 놀라자 A씨가 나를 거칠게 밀쳐내며 화를 냈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A씨 본인은 늘 깔끔한 차림으로 외출했다고 이웃 주민들은 기억했다. 한 주민은 "동네 사람들이 엄마는 화장하고 깨끗하게 다니는데 아이들은 지저분하게 하고 다닌다며 수군댔다"고 귀띔했다.
아동보호기관과의 상담에서 A씨는 "집안이 너무 더러웠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집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지역사회, 긴급 대책 마련에 나서
이날 대책회의를 가진 경찰과 해당 지자체, 아동센터 등은 아이들의 치료, 아이돌보미, 방과후 교실, 기초생활수급 혜택, 푸드마켓, 모금운동 등 다각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계양구 관계자는 "가장 시급한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1일 군부대 장병,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A씨의 집을 청소할 것이다"고 했다.
인천경찰청은 아동보호기관의 아동학대 판단 결과 등을 고려해 부모의 법적 처리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앞서 경찰청 본청에서는 방임 등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만큼 아동보호기관의 고발 조치를 기다리지 말고 수사와 지원책 등을 포함한 신속한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아동들이 심리적 안정을 취할 때까지 당분간 부모, 학교 관계자, 주변 이웃 등을 상대로 구체적인 진상을 파악한 뒤 방임 등 아동학대 여부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설 방침이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부처나 인천시 등에서도 경위 파악과 함께 여론의 동향을 살피는 등 이번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한 관계자는 "아직 언론보도만 접한 상태이지만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며 "단순한 방임이라도 아동학대 범주에 들어간다"고 했다.
/임승재·김주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