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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간의 정이 두터웠던 마을 공동체가 재개발의 광풍 속에 산산이 부서진 인천시 부평구 부개2 주택재개발구역. 지난해 8월 주택재개발 정비구역 해제로 19억여원의 매몰비용을 떠안게 되면서 온 동네 주민들이 빚을 지게 될 상황에 놓였다. /임순석기자 |
한집당 2천만원꼴 갚아야
조합원들에 구상금 청구
"빚 낼 처지 놓이자 원수 돼"
마주쳐도 눈인사 없이 '쌩~'
이웃간의 정이 두터웠던 마을 공동체가 재개발의 광풍 속에 산산이 부서졌다. 지난해 8월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에서 해제되고, 19억여원의 매몰비용을 떠안게 된 부개2구역(경인일보 5월 2일자 22면 보도)의 이야기다.
13일 오전 11시 인천시 부평구 부개2 주택재개발구역. 승용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만한 골목을 사이에 두고 아담한 마당이 있는 2층 단독주택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다. 약 100세대가 모여사는 이 곳은 겉보기에 여느 평범한 동네와 다를 게 없었다. 대다수 주민들은 이 동네에서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넘게 살고 있다.
하지만 오래된 동네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이웃을 대하는 태도는 쌀쌀맞았다. 몇몇 주민들이 집을 나서 골목길을 걷고 있었지만, 마주오는 이웃과 눈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아버지 대에서부터 30년 가까이 이 동네에 살고 있다는 김모(50)씨는 "재개발을 추진하기 전까지만 해도 동네 사람들이 자주 어울리고 단합도 잘됐다"며 "재개발이 무산되고, 온 동네 사람들이 빚을 지게 될 상황에 놓이면서 서로 원수지간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부개2구역은 2008년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후 부동산 경기 하락 등의 요인으로 사업이 지지부진해지자 2012년 12월 조합원 53.8%의 동의로 조합설립 인가가 취소됐다.
재개발 사업을 계약한 시공사는 전 조합 임원 6명을 상대로 19억여원의 매몰비용 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고, 전 조합 임원들은 조합원 80여명을 상대로 자신들에게 넘어온 매몰비용에 대한 구상금 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어림잡아 한 집당 2천여만원의 매몰비용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결국 인천시는 지난해 8월 부개2구역을 재개발구역에서 해제했다.
한 때 부개2구역의 반상회는 이웃끼리 골목에서 부침개를 부치며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잔치'였다. 언론 등에 모범 반상회의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동네에서 통장을 맡았던 윤모(70)씨는 "주민들이 '다 같이 잘 살아보자'고 시작했던 재개발사업이 한낱 부푼 꿈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모두 말문을 닫아버렸다"며 "이제는 돈도 잃고, 사람도 잃은 죽은 동네가 됐다"고 푸념했다.
시는 지난달 초 재개발·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위원회 또는 조합 승인이 취소된 경우 매몰비용의 35%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매몰비용 가운데 나머지 35%는 중앙정부가 부담하고, 30%는 시공사와 추진위 또는 조합이 분담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그러나 이미 훼손된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에 대해선 관심이 적은 상황이다. 시 관계자는 "올 7월을 목표로 매몰비용 지원 관련 조례 개정 작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며 "다만 사적인 계약으로 이뤄진 사업의 결과에 대해 시 차원에서 깊숙이 관여하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