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시외버스종합터미널 화재현장에서 깨진 2층 유리벽이 보이고 있다. 지상 2층은 폐쇄된 구조로 사망자 대다수가 이곳에서 발견됐다. /연합뉴스
"노총각 아들이 두 달 뒤엔 결혼한다고 좋아했는데 이런 변을 당하다니 하늘이 무너진 듯 아프다." "평소보다 버스가 빨리 도착한 것이 원망스럽다." "돈 아낀다고 KTX 대신 시외버스 타시더니…"

고양시외버스종합터미널 화재사고 희생자들의 사연이 27일 하나 둘 알려지면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중국 국적 동포 김모(37) 씨의 어머니(51)는 "아들이 8월 결혼을 위해 양가가 날을 잡던 중이었다"며 마음 아파했다.

희생자 중 유일한 외국 국적자인 김씨의 어머니는 "울산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에 근무하는 아들이 나를 보러 왔다 야근 시간에 맞춰 아침 9시 버스를 타려다 변을 당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한족인 며느리가 제주도를 워낙 좋아해 신혼여행지는 제주도로 결정한 상태였다"며 "3년이나 고양터미널을 이용해 통로를 잘 아는데 왜 대피하지 못했는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숨진 김씨는 부모에 이어 2011년 한국에 왔다. 조선족인 어머니와 아버지(2012년 작고)는 2006년 귀화했다. 김씨는 당시 미성년자가 아니어서 귀화를 못해 현재까지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 26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씨는 아버지가 2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외로운 어머니를 위해 시간이 나면 울산에서 고양시까지 천리가 넘는 길을 올라오곤 했다고 한다.

김씨는 담배도 안 피우며 성실히 모은 돈을 밑천으로 중국에 있는 애인과 결혼, 한국에서 신혼집을 차릴 예정이었다.

구조자 중 제일 마지막에 지하 1층 에스컬레이터 계단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끝내 숨진 또 다른 김모(57·여) 씨는 버스가 평소보다 일찍 도착해 화를 당했다.

김 여인 빈소가 마련된 명지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딸 이모(26)씨는 "엄마가 늘 오전 8시 30분 집을 나서 버스를 타면 보통 9시 10분∼9시 15분께 터미널 건물에 있는 직장에 도착한다"면서 "그러나 어제는 버스가 일찍 오는 바람에 사고를 당했다"며 애통해 했다.

관절염에도 어려운 가정형편을 도우려 일손을 놓지 않았던 고인은 2주 전 고양터미널 푸드코너에 일자리를 새로 얻어 늦은 밤까지 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은 당국의 사고 대처에 쓴소리를 했다.

이씨는 "사고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 전화했는데 오후 3시가 돼서야 겨우 시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신원 미상이라는 말만 반복하더니 시신을 확인한 뒤에야 (어머니) 신분증을 돌려줬다"고 말했다.

이씨의 오빠도 "사고 뒤 어머니를 찾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경찰이고 소방이고 우왕좌왕하는 모습뿐 이었다"며 "전반적으로 큰 사고가 나면 정부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지상 2층에서 숨진 채 발견된 신모(56)씨는 KTX 대신 버스를 타려다 변을 당했다.

▲ 26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종합터미널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차와 경찰이 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씨의 딸은 "울산에서 사업하는 아버지가 2주마다 집에 올라와 주말을 보내고 나서 KTX를 타고 내려가곤 했는데 당일 아침에는 버스가 더 싸다며 고양터미널로 갔다"고 애통해했다.

한편, 사고 현장에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인 '의인'들이 이번에도 있었다.

2층 매표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KD운송그룹 고양권 운송지사장 이강수(50) 씨는 화재 직후 대피했으나 직원들을 구하려 다시 건물로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다.

일산소방서의 한 관계자는 "이씨가 마지막까지 직원들을 대피시키고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목격자들의 말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화재 현장을 목격한 시민이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 속에 뛰어들어 70대 노인을 구한 얘기도 전해졌다.

요진건설 오영석(36) 과장은 터미널 건너편 공사현장에서 화재를 목격하고 직원 20여 명과 사다리 등을 가져가 구조작업에 나섰다.

오 과장은 터미널 뒤쪽 2층에서 노인이 빠져나오지 못하자 수건을 적셔 던져준 뒤 직접 2층으로 올라가 구조했다.

그는 "지게차를 동원, 2층까지 올라가려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못한 일이 마음에 걸린다"면서 "좀 더 일찍 구조가 이뤄졌더라면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