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 등 18개 부채 중점관리대상 공공기관들의 지난해 이자비용이 9조원을 넘어서면서 정부의 부채 감축 계획에 적색경보가 켜졌다.

부채와 이자 증가 속도가 다소 둔화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이자 비용이 영업 이익을 넘어서는 공공기관이 속출한 상황에서 과연 정부가 공공기관 부채에 대해 충분한 통제력을 갖고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공사채 발행 총량제 등을 통해 공공기관의 부채 규모를 통제해 2017년까지 공공기관 대부분의 재무구조를 이자보상배율 1 이상, 부채비율 200% 미만으로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 금융부채, 6년 만에 3배 급증

기획재정부가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정의당 박원석 의원에 제출한 '공공기관의 이자비용 추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력 등 18개 부채 중점관리 대상 공공기관의 지난해 이자비용은 9조74억원을 기록, 사상 처음으로 9조원을 넘었다.

이들 공기업이 하루 이자 비용으로만 247억원씩을 쓰는 것이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연간 평균 이자비용 증가액이 9천억원 수준이었던 데 비해 2013년 이자비용은 1천299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이자비용이 9조원대에 이른 것은 그동안 금융부채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2006년만해도 87조8천억원이었던 295개 공공기관의 금융부채는 2012년 244조2천억원으로 6년 만에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금융부채가 연평균 16조원씩 늘어난 것이다.

부채는 이자를 주고 상환해야하는 금융부채와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 비금융부채로 분류된다. 비금융 부채로는 미지급법인세, 퇴직급여부채, 선수금, 충당금 등이 있다.

부채 규모가 큰 상황에서 금융부채 비중이 높으면 그만큼 이자부담이 커진다.

부채 중점관리 대상 공공기관 가운데 전체 부채에서 금융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넘는 곳은 작년 말 기준으로 대한석탄공사(95.3%), 한국철도시설공사(94.8%), 한국도로공사(94.2%), 한국광물자원공사(93.6%), 한국철도공사(84.9%), 한국수자원공사(82.9%) 등 6곳이다.

예금보험공사와 한국장학재단은 금융업종 특성상 부채 비율이 높아 집계에서 제외했다.

부채 규모가 큰 한국전력공사(한전)의 경우 작년 금융부채가 61조8천억원으로 전체 부채의 59.4%를 차지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98조원으로 68.8% 수준이다.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내지 못하는 일부 공기업은 이자비용에 대한 부담이 더 크다. 한전, LH, 철도시설공단, 철도공사, 수자원공사 등의 이자보상배율이 2012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1미만이었다.

◇ 정부 "2017년까지 공공기관건실화"

정부는 중장기 재무계획 작성대상인 41개 기관의 부채비율을 2012년 말 221.1%에서 2017년 187.3%로 낮춘다는 계획을 앞서 제시했다.

대부분 공공기관의 재무구조를 이자보상배율 1 이상, 부채비율 200% 미만으로 개선하겠다는 목표다.

빚이 많고 방만 경영이 심각한 LH, 석유공사, 한국거래소 등 54개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하반기 중간평가를 통해 우수기관에는 내부평가급을 추가로 지급하되 실적 부진 기관은 기관장 및 상임이사 해임건의, 임금동결 등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앞서 2월 말 부채 과다 23개, 방만경영 38개 중점관리대상 공공기관의 정상화 이행계획을 제출받아 LH 등 5곳의 부채감축안을 '조건부 승인'하고 나머지는 원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조건부 승인 결정이 내려진 LH, 수자원공사, 철도공사, 철도시설공단 등 4개 기관은 4조7천억원 규모의 추가 부채 감축안을 이번에 제출했다. 기관별 추가 감축규모는 LH가 3조3천억원, 수공 2천억원, 철도 8천억원, 철도시설 4천억원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4개 기관의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으로 지급이자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 0.9∼1.2배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상화 이행계획이 성공하면 대부분 공공기관이 재무구조가 건실하고 건전경영이 정착하는 기관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부채 해결까지 '산 넘어 산'

정부가 공공기관 부채 절감에 적극적으로 나선 만큼 공공기관들도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산 넘어 산이라는 평가가 많다.

공공기관들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이후로 일제히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LH는 '더 이상 빚을 지지 않겠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사채 순발행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핵심 자산 외에 팔 수 있는 모든 자산을 매각하고 민간자본을 연간 4조∼5조원 활용해 사업 구조조정에 나서기로 했다.

한전은 사업조정으로 부채 3조4천억원, 서울 강남구 삼성동 부지 매각으로 5조3천억원 등 2017년까지 부채 14조7천억원 줄이겠다고 밝혔다.

석유공사는 부채 비율 축소에 초점 맞추기로 했다. 부채비율을 180%에서 157%까지 낮추고 이자보상배율도 2.1배에서 6.9배로 높이기로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개별 공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부채 감축 대책이 실현 가능한지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자산을 정해진 시간에 강제로 매각하는 것은 헐값 매각이나 특혜 논란을 불러올 수 있으며, 경기 침체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매각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허경선 조세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부채 감축 효과를 내려면 자산매각이 좋기는 하지만 공기업이 계속 운영되는 상황에서 수익 기반이 훼손될 수도 있다"며 "정부와 주요사업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부채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헌 서울대 교수는 "공기업 부채를 국가부채와 통합해 관리해야 한다"며 "그러면 정부는 공기업에 국책사업을 전가하거나 무리한 사업을 추진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