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인 삼성에버랜드가 내년 1분기에 상장하기로 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3일 상장 추진을 발표한 삼성에버랜드의 시가총액이 최고 9조1천억원, 주가는 최고 365만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합뉴스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삼성서울병원에 입원 중인 이건희(72) 삼성그룹 회장이 11일로 입원 한 달째를 맞는다.
 
이 회장은 현재 손발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고 하루 중 7∼8시간 정도는 눈을 뜨고 있는 등 병세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달 10일 밤 10시께 자택에서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 증세를 보여 자택 근처에 있는 순천향대학 서울병원에서 심폐소생술(CPR)을 받고 11일 새벽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져 막힌심혈관 벽을 넓혀주는 심장 스텐트(stent) 시술을 받았다.
 
이 회장이 입원한 지 닷새 후인 지난달 16일 증권가 등에서 위독설이 퍼지기도 했지만, 삼성서울병원과 삼성그룹은 "항간에 떠도는 위독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 회장이 입원해 있는 동안 삼성그룹은 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인 삼성에버랜드 상장 계획을 발표하고, 7년간 끌어온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백혈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영진이 대화에 나서는 등 숨 가쁘게 돌아갔다.

▲ 28일 서울 건설회관에서 열린 삼성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에 삼성전자 측(왼쪽)과 반올림 측 관계자들이 착석해 있다. /연합뉴스
◇ 일반병실 옮겨진 후 서서히 회복되는 단계 

이 회장이 입원 중인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9일 이 회장의 상태에 대해 "손발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하루 중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수면 시간을 제외하고) 7∼8시간 정도 된다"고 말했다.
 
의료진이 이 회장의 병세에 대해 소견을 밝힌 것은 지난달 25일 이후 보름 만이다. 
 
당시 의료진은 "이 회장이 혼수상태에서 회복되었으며 각종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날이 호전되고 있다. 이러한 신경학적 소견으로 보아 향후 인지 기능 회복도 희망적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스텐트 시술 직후 약 60시간가량 저체온 치료를 받았다. 이어 진정제등을 투여하는 진정치료를 받았다. 
 
의료진은 이 회장이 고령이고 지병이 있었던 점을 고려해 의식 회복을 서두르지않고 진정치료를 장시간 지속했다.
 
이 회장의 심장과 폐 등 장기 기능은 정상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뇌파와 MRI(자기공명영상) 검사 결과도 나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달 19일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VIP 병동)로 옮겼다.
 
이 회장 곁에는 부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이 지키고 있으며, 자녀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사업부
문 사장이 수시로 병원을 찾고 있다.
 
◇ 에버랜드 상장발표·백혈병 문제 대화 등 잇따라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3일 이사회를 열고 내년 1분기에 상장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에버랜드의 상장 계획은 그룹 경영권의 3세 승계 작업과 맞물려 시장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에버랜드 상장 계획 발표 이후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를 놓고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를 홀딩스(지주회사)와 사업 자회사로 인적 분할하고 현물 출자 후 지주회사와 에버랜드를 합병해 거대 지주회사를 만드는 방안 등이 증권가 보고서로 나왔다. 
 
그러나 금산분리 법규나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7.2%) 매각 부담 등으로 인해 지주회사 전환이 사실상 불가능한 대안이며, 에버랜드를 정점으로한 현재의 순환출자 구조가 당분간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에버랜드가 상장 계획을 발표한 3일 삼성전자는 삼성SDI 자사주 217만여주와 제일모직 자사주 207만여주를 매수하기로 했다고 공시하는 등 전자 중심의 수직계열화를 공고히 했다.
▲ 지난달 11일 급성 심근경색 증세를 일으킨 삼성그룹 회장이 입원 중인 서울 강남구 삼성의료원. 이 회장은 스텐트 시술을 받은 뒤 회복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2007년 이후 줄다리기를 계속해 온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백혈병 피해 근로자 문제도 지난달 28일 삼성전자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대화에 나서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이 회장이 입원한 지 나흘째인 지난달 14일 권오현 대표이사(부회장)가 처음으로 경영진을 대표해 공식 사과하고 그다음 날 보조참가인으로 관여해온 산업재해 소송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반올림과 피해자 가족도 삼성전자의 입장 변화를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협상 전망은 밝은 편이다.
 
그러나 금속노조 삼성전자 서비스 지회의 파업과 농성이 보름 넘게 계속되는 등삼성전자를 둘러싼 현안은 여전히 산적하다.
 
◇ 외부에선 그룹 시스템 변화에 촉각
 
이 회장이 쓰러진 이후 외부의 평가가 주목한 건 삼성의 시스템 경영이다.
 
그룹의 최대 악재가 될 것이라던 총수 경영 공백이 시장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들의 주가는 이 회장 와병 이후 대부분 상승세를탔다.
 
스티브 잡스 혼자 회사를 이끌다시피한 애플과는 다르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 회장이 삼성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크지만, 삼성은 이미 계열사 또는 사업부문별로 독립성이 강한 데다 방대한 조직에 전문경영 인력이 곳곳에 포진해 있어 총수의 공백으로 인한 충격이 제한적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한편으로는 삼성이 가족경영에서 기관투자자에 의해 지배되는 경영시스템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 기업 특집기사에서 삼성의 지배구조 변화가 아시아의 성공적인 진화 사례라고 소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