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검찰에서 조용한 행사가 하나 치러졌다. 검찰 릴레이 포럼. 지난 2월 출범한 대검 여성정책팀이 마련한 이 행사에는 지난 2005년 수원지검에서 조직폭력 범죄를 맡았던 정옥자 검사를 비롯해 여성 최초로 특수, 공안, 강력, 기획 분야를 전담했던 여검사 4명이 나서 후배들에게 생생한 경험담과 노하우를 전수했다. 지난달, 첫 여성 검사장인 조희진 서울고검 차장검사가 '여성검사, 대선배에게 길을 묻다'를 주제로 후배들에게 강연한 데 이어 두번째다.

대한민국 검찰에서 여성 검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27%, 검사 열명중 세명은 여성이란 얘기다. 부장검사급 이상 간부 500여명중 여성이 18명에 불과한 상황이니, 실제 수사현장에서의 체감 비율은 더 높아진다. 지난 2009년 사법연수원 수료 신규 검사중 여성 비율이 절반을 넘어선 이후 검찰의 '여초(女超)'현상은 이제 표현 자체가 진부한 상황이 됐다.

여성 대통령까지 나온 지금에야 도통 '개념 없는' 사람으로 내몰리기 십상이겠지만, 우리 주변에서 '여자가 무슨…'이라는 말이 별 거부감없이 통용됐던 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제아무리 똑똑해도 '여자가 무슨' 한마디면 주변사람들 대개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당사자인 '여자'들은 이같은 편견에 맞서며 기껏해야 '그 여자 참 지독하다'는 평가를 받기 일쑤였다. 정 검사가 회고하듯, 당시 수원 조직폭력배들 사이에서 '여자에게 걸리면 망신이니 싸움을 하지 말자'는 자정 결의까지 나온 것도 맥은 좀 다르되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여성비하 습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여성인 검사는 여전히 '여검사'다. 수년전, 내연관계였던 남성 변호사로부터 승용차와 핸드백을 선물로 받아 물의를 일으켰던 여성 검사는 '벤츠 여검사'로 지칭되며 온갖 지탄을 받았다. 사건의 본질은 검사로서 수사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과 뇌물을 받았는지 여부였지만, 세간의 관심은 그보단 이 검사의 사생활, 해당 변호사와의 관계에 모였다. 젊은 여검사였기 때문이다. 여성 검사들의 수사상 성과나 실적들도 대개는 섬세함, 온정, 부드러움 같은 수식어와 함께 '여검사'라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7·30 재보선에서도 여검사가 화제다.

수원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정미경 후보와 새정치민주연합 백혜련 후보는 같은 대학·사시 1년 선후배 관계로, 둘다 검사 출신이다. 검찰을 떠나는 과정도 엇비슷했다. 정 후보가 노무현 정부시절 강금실 전 법무장관을 비판하는 책을 발간하고 검사직을 그만뒀다면, 백 후보는 이명박 정부 당시 대구지검 검사로 재직하다 "정치 검찰이 부끄럽다"며 사표를 냈다. 각각 여야로 나뉘어 상반된 길을 걷게 됐지만, 둘다 상명하복의 검찰내에서 권력에 맞서 옷을 벗었다는 공통의 개인사(史)를 갖고 있다.

이번 재보선이 거물 대 신인, 토박이 대 낙하산 등등의 구도를 형성하며 나름 열전이 이어지고 있다지만, 구경꾼의 입장에선 이 '여검사간 대결'이 자못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여당의 과반의석 회복에도, 야당의 세월호 민심 이어가기에도 그닥 관심없는 유권자들에게, 그것도 삼복지경 휴가절정기에 치러져 투표율을 걱정해야 하는 재보선에서 그나마 유권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매치가 성사된 셈이다.

기왕이면 이 재미있는 대결이 가뭄의 단비 같은 흥행성공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구태와 이전투구가 판치는 게 작금의 선거판이었다면, 적어도 이 두 후보의 대결만큼은 권력의 부당함에 맞섰던 검사의 기개를 겨루는 장이 됐으면 하는 것이다. 원칙에 충실해 범죄꾼들의 기피 대상이 되고, 수십년 검찰의 폭탄주 회식문화까지 바꿔버린 여검사들의 힘이 이번 선거에서 재연된다면, 아직 이 사회 어디엔가 발톱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여자가 무슨…' 따위의 편견은 남자들의 비겁한 자기합리화였을 뿐이란 걸 다시 증명하게 된다. 대한민국 여검사 출신다운 정정당당한 승부라면, 유권자가 누구를 택하든 두사람은 모두 승자가 된다.

/배상록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