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미디어 시장은 어제 치러진 재·보선 보도로 넘쳐날 것이다. 신문과 방송은 선거결과 분석의 예리함을 다툴 테고, 향후 정국을 전망하는 평론가들의 고담준론이 별처럼 쏟아질게다. 하지만 문화담당 데스크 처지에서 지켜보자면, 선거는 '반문화적 퍼포먼스'일 뿐이다. 이번 재·보선 역시 다르지 않았다. 심판, 규탄, 야합, 패륜 등 살벌한 단어들이 여야 선거 캠페인의 핵심을 관통했다. 스토리와 감동도, 인격과 상식도 없었다. 정책과 공약이 있다지만 욕설의 강물에 휩쓸렸다. 반문화적 선거의 귀결은 유권자의 무관심과 냉소. 우리는 언제까지 반문화적 정치 퍼포먼스에 국민의 심력을 소모해야 하는가.

토니 블레어는 1997년, 보수당의 18년 집권을 종식시키고 영국 총리에 취임했다. 노동당의 젊은 총리는 국가이미지 전략으로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를 내세웠다. 음악·예술·패션분야 육성을 통해 젊은 영국의 이미지를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3년 뒤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이 총리에 취임하자 새로운 국가 이미지 전략을 제시하는데 '올드 브리타니아(Old Britannia)'가 그것이다. 고성, 박물관 등 영국의 역사적 문화유산을 활용해 영국의 관광산업을 중흥시키겠다는 문화전략이었다. 그럼 '쿨'과 '올드'가 부딪혀 '브리타니아'는 엉망이 됐을까? 아니다. '쿨 브리타니아'로 영국의 대중문화와 관련산업은 크게 성장했다. '올드 브리타니아'는 영국의 고성에 개발도상국 여행자들을 가득 채웠다. 선택과 집중의 문제일 뿐, 영국 정부는 특정 문화분야를 정책에서 소외시키는 바보짓을 하지 않았다.

부러운 건 블레어와 캐머런이다. 문화를 통해 자신의 치세에 어떤 영국을 만들지 선명하게 제시한 문화적 식견과 자질을 가진 정치지도자. 정치인의 문화적 식견과 자질이 그 나라의 문화수준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을 외치며 문화기본법, 지역문화진흥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를 체감하는 국민은 드물다. 매달 문화가 있는 수요일 하루로 문화융성이 이루어진다면 기적이다. 법으로 문화진흥을 강제할 수도 없다. 문화가 한 민족이 한 시대를 살아내는 삶의 총합이라는 사실을 국가와 국민 전체의 인식으로 전환해야 문화진흥은 가능해진다.

경기도 공직자들이 문화인식 패러다임을 이렇게 바꿀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 문화수도, 경기도'라는 비전을 가질 수 있다. 지방문화는 중앙의 문화정책과 예산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경기도의 문화행정이 중앙정부의 문화행정을 견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면 얼마든지 가능한 비전이다. 경기도의 문화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조선왕릉, 수원화성, 남한산성 등 세계문화유산이 즐비하다. 경기도내 도시와 농촌에는 날마다 새로운 창작집단이 세워지고 예술인들이 모여든다. 안양과 같이 공공예술분야를 선도하는 곳도 있다. DMZ는 언젠가는 반드시 세계적인 자연유산으로 회복될 것이다.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자치단체이면서, 문화갈증에 시달리는 신세대 거주자들이 넘쳐난다. 경기도의 문화 잠재력은 전혀 문제가 없다. 여기에 지도자의 문화적 비전과 이를 실행할 열린 조직이 합쳐지면 엄청난 문화적 에너지 창출이 가능하다.

작금의 현실은 이와 달라 마음이 서늘하다. 도지사 취임후 도내 문화기관들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남는 자와 오는 자에 대한 선이 불분명해 행정의 공백이 심했다. 그 과정에서 낯 뜨거운 중상과 음해가 돌았다. 또 몇몇 기관의 통폐합 문제는 순전히 행정편의나 재정논리 수준에서 거론되면서 종사자들의 사기를 죽이고 있다. 이같은 진통이 경기도의 문화 비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방권력 교체기 관행의 답습이니 답답한 일이다.

남경필 지사가 강조하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상생의 정치는 우리 사회의 문화역량이 쌓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남경필 지사가 '대한민국 문화수도, 경기도'에 대한 비전을 세워주기 바란다. 전국에서 인재가 몰릴 것이다.

/윤인수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