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이명박정부 시절,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였던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총리직에서 자진 사퇴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논어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

무신불립,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이다. "국민의 믿음이 없으면, 신뢰가 없으면, 제가 총리직에 임명된다 해도 무슨 일을 앞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밝힌 사퇴 배경이었다.

20여일간의 치열했던 자질 검증이 몇 분간의 발표로 종지부를 찍는 것을 TV를 통해 접하면서 '신뢰의 가치'를 되새겨본 기억이 새롭다. 지금 생각해 봐도 지도자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불신'을 꼽은 그의 진단은 정확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 낙마사태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해 서지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되풀이됐던가.

얼마 전 휴가차 시골에 내려가 지인들과 오랜만에 회포를 푼 적이 있다. 누군가가 필자에게 "유병언 사망의 진실이 뭐냐"고 물었다. DNA 감식결과 등 국과수의 발표를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거였다. 다른 지인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직업상 정보접근성이 좀 나을 것이란 생각에서 던진 질문이었을 터인데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별 생각없이 유언비어를 퍼나르는 10대 네티즌도 아니고 나이 먹을 만큼 먹은 학부모들이 공신력있는 기관의 발표조차 믿지 않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했다. 어찌 보면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의 골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조그마한 술자리를 둘러싸고 온갖 설(說)이 오가는 것을 보면서 다시 무신불립이란 말이 떠올랐다. 시대를 초월해 적용가능한 지혜가 네 글자에 함축돼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사실 '신뢰의 붕괴'로 인해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진통은 어마어마하다. 불신의 1차 발원지는 물론 세월호 사고 당시 단 한 명도 구조해 내지 못한 정부의 무능이다. 여기에다 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검경의 부실한 대응까지 맞물려, 각종 의혹이 유입된 불신이란 풍선은 날로 부풀어 오르고 있다. 경찰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악성 게시글에 대해 수사를 벌이기로 했지만 풍선효과를 연상케 하듯 한 쪽을 제어하는 사이, 또 다른 쪽에서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시신 발견 당시 초기대응 부실로 유언비어 양산의 장(?)을 마련한 경찰이 유언비어에 맞불을 놓은 격이니 '자충수'란 지적이 나올 수밖에….

최근에는 무신불립의 양상이 군으로 옮겨붙은 모양새다.

"아들 낳은 걸 처음으로 후회하고 있다" "부대 안에 CCTV를 설치해 매일 보고 싶은 심정이다."

'윤일병 사망 사건'의 참상이 알려진 뒤 경기도의 한 보충대서 열린 첫 입소식에서 터져나온 장정 부모들의 푸념이라고 한다. "부대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집에 전화할 때 '여기 천국같다'라고 말하기로 하는 등 일종의 암호를 정했다"는 한 부모의 말은 한계에 이른 군에 대한 불신의 종결판이다.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그래서 더 바로 서야 할 군이 불신의 늪에서 중심을 잃고 있다는 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국민적 컨센서스(consensus)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사람이 결정을 내릴 때, 그리고 그런 사람이 우리에게 앞으로 나갈 방향을 제시할 때 가능하다'고 했다. 여기에서 '신뢰받는 사람'은 지도자는 물론 정부·군·검경 모두에 적용될 것이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무신불립 현상을 처절하게 체감해 왔다. 이제 무신불립을 극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입돼야 할 때이다.

개인적으로 무신불립이란 말에선 '○○가 없으면 ○○할 수 없다' 식의 다소 네거티브적 뉘앙스가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신뢰가 있으면 바로 설 수 있다' 식의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가치로 위안을 받고 싶은 요즘이다. 무신불립을 넘어선 새로운 가치. '유신가립'(有信可立)이라 부르고 싶다.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