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포천 빌라 살인사건 피의자 이모(50,여)씨가 3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씨는 이날 오후 1시 의정부지법에서 심문을 받는다. /연합뉴스 |
'포천 빌라 살인사건' 피의자 이모(50·여)씨는 '버리지 못하는 증세'로 알려진 '저장 강박증'(호딩·hoarding)을 앓는 것일까.
이씨의 큰아들이 고무통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아버지(51)의 사망 시점을 10년 전이라고 진술함에 따라 살인사건과 별개로 이씨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시신을 집에 둔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장례를 치른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시신을 옮겨 집안에 뒀다는 아들의 진술은 상식 밖이다. 아들의 진술 대로라면 당시 그는 만 18살이었다.
게다가 남편의 시신 위에 자신이 살해한 내연남(49)의 시신을 올려둔 고무통을 집안에 둔다는 점은 공포영화에서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엽기적이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모든 정신장애 증상이 범죄행위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는 것은 곤란하다"면서도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호딩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호딩은 랜디 O. 프로스트 스미스대 교수와 게일 스테키티 보스턴대 교수가 쓴 '잡동사니의 역습'이란 책이 2011년 번역·출간되면서 국내에서도 알려졌다.
저장 강박자(hoarder)들은 추억이 담긴 물건부터 구하기 어려운 수집품, 심지어는 자신의 손톱이나 배설물까지 보관에 집착하기도 한다.
저장 강박자 20여 명의 행동 양태와 치료 내용을 다룬 이 책은 저장 강박자 대부분이 상실이나 외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
▲ 경기도 포천시의 한 빌라 내 고무통 안에서 남자시신 2구가 나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사진은 31일 오후 감식을 위해 현장으로 들어가는 경찰의 모습. /연합뉴스 |
아들의 죽음을 놓고 서로 책임을 묻는 등 남편과의 사이도 안 좋아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시신이 발견됐을 당시 집안은 쓰레기 매립장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시신이 발견되기 약 1년 전에 이씨의 집 내부를 목격한 주민들은 쓰레기통 같다고 표현했다. 이씨의 친인척들도 이씨에 대해 '지저분하다'고 기억했다.
이수정 교수는 "시신을 따로 보관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시신을 포함해 집안에서 생긴 모든 것을 버리거나 처치하지 못하는 증세로 이해해볼 수 있다"면서 "집안에도 온갖 살림살이가 난장판이었다고 하니 더욱 그 정황이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런 장애들은 본인이 의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밀 진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김복준 중앙경찰학교 외래교수는 "살해한 시신을 집에 두는 것은 흔치 않은 범죄유형인데 살인범들이 시신 일부를 남겨두고 자신의 범행 전리품처럼 보는 경우는 더러 있다"고 소개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포천 살인사건 피의자의 상태는 시신을 내다버리지 못해 오랫동안 집에 둔 것으로 보여 새로운 연구대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지난 6일 범죄심리행동 분석가인 프로파일러가 면담한 결과 이씨는 지적능력·정신장애가 있지 않으며 감정표현도 일반인과 비교해 좋은 편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씨의 오락가락 진술 등으로 인해 범행 동기와 사건의 전모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앞서 지난달 29일 오후 9시 30분께 포천시내 한 빌라의 작은방 고무통 안에서 이씨 남편의 시신과 내연남과 시신이 발견됐으며, 경찰은 수사에 나선 지 3일 만인 지난 1일 피의자 이씨를 검거했다.
이씨는 내연남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살인 및 사체은닉)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