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오후 과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후손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황교안 법무부 장관(왼쪽)이 윌리엄 린튼 선생의 증손자 데이비드 조나단 린튼씨에게 국적증서를 수여하고 잇다. 윌리엄 린튼 선생은 1912년 선교사로 입국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드는 데 공헌했고, 3·1운동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해외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연합뉴스
"제가 느끼는 감회와 영광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대한민국이 더욱 제 마음의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11일 법무부로부터 국적증서를 수여받은 데이비드 린튼(43·한국명 인대위)씨는 조금 느리지만 유창한 한국어로 벅찬 감격을 전했다.

린튼씨의 고조부는 1895년 기독교 선교를 위해 한국에 온 유진 벨 선생이다. 증조부인 윌리엄 린튼 선생은 1912년 입국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드는 데 공헌했고, 3·1운동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해외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후 100년이 넘는 동안 50여명의 가문 후손들은 한국과 계속 인연을 맺어왔다.

린튼씨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발을 디뎠다.

그는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이 한국에 가서 가족사의 발자취도 한번 찾아보고 그 나라에 대해서도 한번 느껴보고 오라고 말해서 (집안 아이들이) 다 한번씩 다녀오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린튼씨는 그 이후 한국을 자주 오가게 됐다. 미국에서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에는 서울 신림동에 자취방을 마련해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서울대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작은아버지 스티브 린튼이 설립한 대북지원 민간단체인 유진벨 재단의 업무를 함께 하게 되면서 한국에 점점 뿌리를 내리게 됐다.

대한결핵협회 남북협력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고 2012년 귀화해 한국이름 '인요한'으로 더 잘 알려진 존 린튼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교수도 그의 숙부다.

린튼씨는 "작은아버지처럼 한국인이 돼 앞으로 평생 여기에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논리적인 생각이나 특별한 정체성 때문은 아닌데, 올해는 (귀화신청을 할) 때가 된 것 같았다"며 멋쩍게 웃었다.

현재 린튼씨는 앨라배마주 대법원 변호사 등으로 활동한 경력을 살려 국내 한 대기업 법무팀에서 일하고 있다.

린튼씨는 "한국의 청년실업 실태에 관심이 많다. 법률적인 지식과 사업모델을 결합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한국사람이 됐으니 이제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에도 꼭 투표하고 싶다"며 "조상들이 왔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나는 외국 사람 입장에서가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가족 구성원처럼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