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 내리쬐는 방안 '찜통'
500m거리 시원한 경로당
쇠약해진 몸으론 '천리길'
파지수거 10분새 땀범벅
생계 탓 야간시간 활동도
폐지값마저 반토막 '막막'
11일 오후 1시 수원시 팔달구의 한 주택가.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벅찬 좁은 골목 안에 흡사 쪽방촌이 연상될 정도의 작고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골목에서도 맨끝 단칸방에 원일우(72·가명)씨가 몸을 웅크린 채 가만히 앉아 있다. 원씨의 방은 성인 한 명이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공간이다.
원씨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온 몸에서 땀이 난다. 방안 열기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힌다"고 토로했다.
가을 소식을 알리는 입추까지 지났지만, 실제로 슬레이트 지붕 바로 밑 원씨 방안의 열기는 아직까지 찜통 그 자체였다.
더운 날씨에도 원씨는 전기료 걱정에 집주인이 빌려 준 선풍기도 제대로 틀지 못하고 있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있는 동네 경로당에 가면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오후를 지낼 수 있지만, 파킨슨 병과 중풍에 걸려 팔다리가 편치 않은 걸음으로 가기엔 500여m에 불과한 경로당도 너무 멀다.
하지만 원씨는 매일 불편한 몸을 이끌고 경로당으로 가고 있다. 원씨는 "경로당에 가는 길에 '쓰러져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매일 가고 있다"며 "경로당을 다니는 일이 여름철의 가장 큰 일과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9시께 안산의 상록수역 인근에선 파지를 줍는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이글거리는 한낮의 태양을 피해 이른 새벽부터 오전 동안 파지를 모으고, 해가 지고 나면 다시 밖으로 나와 밤 늦게까지 파지를 줍는다.
올해로 19년째 파지를 모으는 민기성(79·가명)씨는 최근 들어 평균 36도를 넘나드는 무더위를 견디기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한 부인을 돌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매일 나와 파지를 모아야 한다.
무더위에 더해, 1㎏당 200원이던 파지 값이 최근 100원으로 반토막이 나면서 민씨의 여름나기는 더욱 고되졌다.
민씨는 "요새는 해가 떨어져도 무더위로 숨이 막힌다"며 "한낮엔 10분 만에 속옷이 땀에 젖는다"고 말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폭염속 노인들의 안전을 위해 도내 곳곳에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상당수 노인들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생계를 위해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윤영기자
선풍기조차 멈춘 쪽방 '더위먹은 황혼'
입력 2014-08-1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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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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