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서울 충무로1가 포스트타워 외벽에 다음 달 부산에서 개최되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 홍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4년마다 개최되는 ITU 전권회의는 세계 각국 정보통신기술(ICT) 장관들이 참석해 글로벌 ICT 정책을 최종 결정하는 최고위급 총회다. 부산 회의는 193개 회원국이 참석한 가운데 다음 달 20일부터 11월 7일까지 부산 해운대 벡스코 일대에서 열린다. /연합뉴스
2014 ITU 전권회의 개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내달 20일부터 3주간 부산에서 열리는 이 회의에는 193개국 장관급 인사 150여명을 포함해 3천여명의 정부 대표단이 참석, 글로벌 ICT 현안을 논의하고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

특히 ITU 설립 150주년과 유엔 새천년개발목표(MDG·2015년까지 세계 극빈층 비율을 절반으로 줄이자는 것)가 종료되는 시점과 맞물려 ITU가 나아갈 방향, 빈곤 퇴치를 위한 ICT의 역할 등 범지구적 차원의 문제가 중요하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행사 준비를 총괄하는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역대 어느 대회보다 실질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의제 조율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 전권회의서 어떤 의제들 논의되나

전권회의는 올림픽에 버금가는 참가국 수만큼 논의되는 의제 수도 방대하다. 미래부에서는 이번 회의에서 70여개의 의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ICT와 인터넷이 인류의 삶에 깊숙이 들어온 만큼 전권회의에서 논의되는 의제도 지구촌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전권회의 의제는 아시아·유럽·아프리카·미주 등 지역별 준비회의에서 회원국들의 의견을 받아 만들어진다. 국가·대륙 간 관심사가 달라 의제 조율에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의제 채택 가능성이 큰 이슈들을 보면 우선 인터넷 공공정책이 꼽힌다. 인터넷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인터넷의 공공성이 화두가 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인터넷 공공성 확보를 위한 각국 정부의 역할, 공공성의 범위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이는데 국가마다 또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입장이 달라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현실을 반영해 ICT가 기후변화 대응 또는 환경보호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핵심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4년 전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전권회의에서 신규 결의로 채택된 의제인 만큼 이번 회의에서는 세부 실천계획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정보보안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사이버 보안도 중요한 이슈가 됐다. 이번 회의의 관심은 ITU가 사이버보안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로 모인다. 개발도상국은 ITU의 권한 강화를 주장하는 반면에 선진국들은 이에 소극적인 입장이어서 논의 결과가 주목된다.

이밖에 ▲ 온라인 아동보호 ▲ 정보격차 해소와 개발도상국 지원 문제 ▲ 양성평등을 위한 ICT의 역할 ▲ 장애인의 ICT 접근 등도 전권회의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달라하라의 전권회의에서는 신규 23건, 개정 43건, 폐지 15건 등 총 81건의 결의가 채택된 바 있다.

◇ 한국이 주도하는 의제…결의 채택 가능성은

이번 전권회의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제안한 'ICT 융합'과 '사물인터넷(loT. Internet of Things) 촉진' 등 2개 의제의 결의 채택 가능성이다.

우리나라가 전권회의에서 특정 의제를 선도한 것은 1952년 ITU 가입 이래 처음이다. IT 강국으로서 한국의 위상과 발언권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ICT 융합은 ICT 응용기술을 다른 산업에 적용해 공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창조경제 개념을 글로벌 공동성장 모델로 삼자는 것이다.

또 IoT 촉진은 미래 초연결사회의 핵심 요소인 IoT에 대한 인식 제고와 인류 공동번영을 위한 ITU의 역할 강화가 주목표다.

두 의제는 지난달 태국 방콕에서 열린 ITU 전권회의 대비 아시아태평양지역 최종 준비회의에서 역내 회원국의 압도적인 지지로 아태지역 공동결의(ACP)로 확정돼 본회의 결의안 채택 가능성을 높였다.

특히 loT 관련 사안이 ITU 차원에서 의제로 제안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최종 결의가 이뤄질 경우 국내 loT 산업의 세계무대 진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부 관계자는 "한국이 제안하는 의제들이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창조경제 모델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해외로 전파될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한국인 첫 ITU 선출고위직 진출과 7선 이사국 선출도 향후 우리나라 ICT의 위상을 정립할 중요한 이벤트다.

우리나라는 ITU 표준화 총국장 자리에 이재섭 카이스트 IT융합연구소 연구위원을 후보로 내세우고 득표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ITU 표준화 총국장은 이동통신·IPTV 등 ICT의 국제표준에 대한 최종 결정권한을 가진 직책이다. 이 연구위원이 선출되면 한국의 ICT가 세계표준을 주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 전권회의 표결에서는 튀니지·터키 출신 후보자와 맞붙는데 선출 가능성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경합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ITU 이사국 7선 진출의 경우 상대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50개 회원국을 가진 아시아지역에는 13석이 배정됐는데 현재 17개국이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 행사 성공적 개최 준비에 만전…에볼라 대응책도 마련

이번 회의는 또 글로벌 최고로 꼽히는 우리나라 ICT 산업을 전 세계에 뽐내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미래부는 이번 회의에 최첨단 ICT 인프라를 구축해 참가자들의 편의를 지원할 예정이다.

초고속 유·무선 네트워크를 활용해 종이 없는 회의를 구현하고, 회의는 물론 숙박·교통·관광 관련 정보를 원스톱으로 서비스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공급할 계획이다.

아울러 전권회의 개최 장소인 벡스코 주변에서는 국내 기술과 장비를 적용한 기가인터넷(1Gbps), 초고해상도(UHD) 방송, 근거리 무선통신(NFC) 등을 시범 서비스한다.

세계적으로 안전 이슈가 부각되는 현실을 고려해 행사의 안전한 개최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미래부는 참가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고자 제네바 ITU 본부 보안·안전팀과 업무 협의를 지속하고 있으며 부산시·경찰청·소방안전본부 등 유관기관이 참여하는 안전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와 함께 신속한 응급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부산시내 주요 의료기관을 공식병원으로 지정해 협조체제를 강화했다.

아프리카를 휩쓸고 다른 대륙으로 전파될 조짐을 보이는 에볼라 바이러스 대응책 마련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미래부는 일단 다른 유엔 회의의 대응방식에 근거해 에볼라 바이러스 발병국에도 문호를 열어놓되 입국 단계에서 검역을 철저히 하고 잠복 기간이 있는 만큼 추적 점검에도 전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행여나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초동 대처 매뉴얼도 마련해뒀다.

민원기 ITU 전권회의 의장은 "이번 전권회의가 한국 IT산업이 재도약하는 발판이 되고 개최지인 부산이 글로벌 컨벤션 도시로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용어해설> ITU 전권회의

ITU 전권회의는 국가마다 상이한 통신체계 조정과 협의를 위해 1865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개최됐다.

전권(全權)회의란 국가원수로부터 ICT 관련 일체의 권한을 위임받은 전권대사(장관)들이 모여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회의라는 뜻이다. 글로벌 ICT 현안의 해결 방안과 미래 정책 방향이 결정되는 중요한 자리다.

4년 주기로 대륙별 순환 개최되는데다 국력과 관계없이 유엔의 모든 회원국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어 ICT의 올림픽으로 불린다.

우리나라가 ITU 전권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아시아에서는 일본(1994년)에 이어 두 번째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국제행사라는 의미도 있다.

5개 대륙이 한차례 순환하는데 약 20년이 소요되는데다 현재 중국·호주·인도 등이 회의 유치를 희망하고 있어 우리나라가 이 회의를 다시 개최하려면 80년 이상 기다려야할 것으로 보인다.

전권회의에서는 반드시 최종의정서를 채택하게 된다. 최종의정서는 헌장·협약이 포함돼 회원국은 자국에서 국회 비준 또는 외무 관련 정부부처의 승인·수락서를 받아야 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