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억 아시아인의 스포츠 축제인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이 지난 19일 개회식을 시작으로 16일간의 열전에 들어갔다.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를 슬로건으로 10월 4일까지 인천 등지에 있는 48개 경기장에서 총 36개 종목이 치러진다. 특히 북한선수단이 참가하면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원국 45개국 모두 출전하는 진정한 아시아인의 축제로 의미를 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첫 주말경기를 치른 아시아 각국의 메달 경쟁이 가열되면서 아시안게임의 열기는 한층 뜨거워지고 있다. 주최국인 대한민국은 아시아 스포츠 강국의 위상에 걸맞게 금메달 90개 이상, 5회 연속 종합 2위의 목표를 내걸었다. 중국선수단은 우리나라(831명)보다 많은 899명을 출전시켰지만 우리 선수단의 선전을 기대한다.

'45억의 꿈, 하나 되는 아시아'라는 주제로 19일 인천아시안게임 개회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날 6만2천명을 수용하는 인천아시아드경기장에서 본개회식은 4년간 아시안게임을 기다렸던 지구촌의 관심과 참가선수단의 열정이 한데 모여 시작 전부터 현장에서 흥분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한국 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과 총연출을 맡은 장진 감독이 진두지휘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개회식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컸다. 하지만 기대했던 관심과 감동은 없었다. 어떤 메시지를 담으려 했는지 알아내기 어려웠다. 일부러 행사수준을 평가절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느끼기에 이번 개회식은 장동건·김수현·이영애가 주연을 맡은 '한류'를 주제로 CG(컴퓨터그래픽)를 활용한 돈 많이 들인 어설픈 동네영화 한 편에 지나지 않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4막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오래전 하나였던 아시아가 세월에 따른 지각변동으로 대륙별로 쪼개졌다가 다시 인천에서 하나가 된다는 설정을 그려냈다.

효녀 심청이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졌고, 대한민국과 세계가 새로운 문명을 교류했던 곳도 바다라는 메시지도 담았다. 그리고 배를 타고 45개국 아시아인들이 함께 '하나'의 희망을 안고 인천항으로 향한다는 얘기다. 그리곤 미래를 열었던 도시 '인천'을 소개한다. 비류와 심청이 만나고 꿈을 가진 사람들이 척박했던 인천에 마을을 만들어 미래를 개척한다는 줄거리다. 이후 1883년 개항 이후 인천을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근대문물, '등대' '우체부' '전화기' '철도' 등을 하나씩 소개한다.
특히 철도는 근대화의 상징이 아닌 일제식민지하에서 생겨난 일본의 야심(?)을 담은 뼈아픈 희생의 역사이기도 하다. 과연 이 작품이 역사와 인천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토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철도현장 인부들이 무대위로 올라오는 장면은 필자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군사독재 시절을 경험했던 세대에겐 아주 어두운 도시에 커다란 군화소리를 내고 발맞춰 가는 군인들의 모습을 회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과연 외국의 손님들은 이날 개회식에서 무엇을 봤을까.

외신들은 엇갈린 평가를 내놓고 있다. 아시아가 인천에서 화합하고자 하는 소망을 담았다는 소식에서부터 아시아 전역에서 일고 있는 '한류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는 내용을 타전한 외신도 있다. 하지만 일부 외신은 "대형 한류콘서트처럼 느껴졌다" "성대한 체육행사가 영화제같이 느껴졌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대만의 통신사인 연합보는 '사상 최악의 개회식'이라고 했다. 연합보는 또 "체육계의 영웅이 아닌 한류스타가 주인공이 된 개회식"이라고 꼬집었다. 중국 스포츠지 차이나스포츠데일리 리슈에이앙(26·여) 기자도 "한국 연예인을 좋아하는 중국인을 위해 만든 개회식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개회식 공연 중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면 소리를 지르는 등 흐름을 깼다"며 "아시안게임으로는 낙제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아인의 스포츠 축제에서 인천과 스포츠가 소외받은 느낌이다.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