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오전 성수대교 참사 20주기 위령제가 열리는 서울 성수대교 북단 아래 희생자 추모비 위로 먹구름이 지나고 있다. 지난 1994년 10월21일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의 상판 48m 구간이 무너져 내려 32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사망하고 17명이 크게 다쳤다. /연합뉴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4분. 정확히 20년 전 한강을 건너 학교로, 직장으로 향하던 32명이 어처구니없게도 목숨을 잃은 곳, 성수대교.

사고가 나던 날과 꼭 같이 구슬픈 비가 하염없이 내리던 21일 오전 11시.

성수대교 북단 한 켠을 쓸쓸히 지키고 있는 참사 희생자 위령탑에서 20주기 위령제가 열렸다.

올해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대형 안전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데다 불과 4일 전에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가 일어난 까닭에 이번 위령제는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 성수대교 유가족 "20년 지났지만 바뀐 것 없어" = 10여명의 희생자 가족들과 지인들은 위령탑 앞에 차례로 나와 묵념을 하고 향을 피운 뒤 흰색 국화를 내려놓았다. 헌화를 마친 이들의 눈은 저마다 충혈돼 있었다.

위령탑 주변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향이 빗줄기 사이로 자욱하게 퍼졌다. 제단에는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과 함께 배와 사과, 떡 등이 놓여 있었고, 각계에서 보낸 희고 노란 국화꽃이 자리했다.

▲ 성수대교 참사 20주기인 21일 오전 서울 성수대교 북단 아래 희생자 추모비에서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 지난 1994년 10월21일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의 상판 48m 구간이 무너져 내려 32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사망하고 17명이 크게 다쳤다. /연합뉴스
"강용남. 김원석. 배지현. 백민정. 이지연. 최양희. 백민정. 장세미…"

헌화 후 유가족들은 추도사와 추도시를 낭독한 데 이어 사고로 희생된 32명의 이름 하나하나를 천천히 부르며 넋을 기렸다.

이들은 추도사에서 "우리는 지난 20년을 형제자매, 아버지, 어머니를 가슴에 묻으며 한없는 고통과 눈물로 보냈다"며 "유가족의 단 한가지 소망은 다시는 이땅 대한민국에서 이와 같은 비극적인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삼풍백화점과 대구지하철 화재 등과 세월호 사고, 최근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등 안타까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온 국민이 안전요원이라는 생각으로 안전 불감증의 굴레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다시는 성수대교 붕괴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고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안타깝고 비참하게 희생된 고인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고 했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로, 출근하던 아버지를 잃었던 유가족 최진영(47)씨는 "사고가 나던 날도 오늘처럼 비가 왔다"며 "마음이 너무나 아리고 아린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가족 대표 김학윤(48)씨는 "원래 IT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세월호 사고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건설사 안전 감시를 하는 곳으로 직장을 옮겼다"며 "성수대교 사고 후 20년이 흘렀는데 아무것도 바뀐 게 없어 화가 난다"고 말했다.

▲ 성수대교 참사 20주기인 21일 오전 서울 성수대교 위로 차들이 지나고 있다. 지난 1994년 10월21일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의 상판 48m 구간이 무너져 내려 32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사망하고 17명이 크게 다쳤다. /연합뉴스
사고 당시 스물여덟이던 김씨는 성수동에 있던 회사로 출근 중이던 두살 터울 형을 잃었다. 그는 "여전히 가슴 아프고 답답하다"며 "성수대교 사고 이후엔 교량 안전 규제가, 세월호 참사 이후엔 해양 관련 규제가 강화됐는데 이렇게 한 군데씩 고치지 말고 사회 전반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판교 참사에 대해서도 "안전 불감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며 "공연장에 안전요원을 배치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 "20년 전이나 지금이나"…후진국형 사고 되풀이 = 성수대교 참사는 사회에 안전 불감증과 부실공사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켰던 충격적인 사고였다.

사고 당일 한창 출근시간이던 오전 7시 40분께 10번과 11번 교각 사이 상판 48m 구간이 붕괴하면서 16번 시내버스와 승용차 등 차량 6대가 한강으로 추락해 등교하던 무학여고 학생들을 비롯해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이 사고는 부실공사 문제와 당국의 관리감독 부재라는 충격적인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사고 직후 접수된 신고에도 구조단이 1∼2시간 후 도착하거나 사고 직전 다리를 건넌 사람들의 신고가 묵살되는 등 사회 안전망의 큰 구멍을 그대로 보여줬다.

지난 1997년 복구된 성수대교는 43.2t까지 통과할 수 있는 1등교로 거듭났고, 2004년엔 8차로로 확장돼 하루 9만 7천대의 차량이 오가고 있다.

▲ 오는 21일로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발생한지 20년이 된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0분께 교각 10번과 11번 사이 상판 48m 구간이 무너지면서 버스 등 6대 이상의 출근길 차량이 추락,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친 참사였다. 각종 선박과 중장비가 동원돼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교량이 끊어져도 한강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하는 이중 안전장치인 낙교 방지턱과 교량 손상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온라인 감시 시스템도 구축됐다.

또 이 사고를 계기로 전국 시설물 안전을 관리하는 한국시설안전공단이 생겼고, 시설물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성수대교 참사 뒤에도 대규모 인명피해를 동반한 대형 인재(人災)는 끊이질 않았다.

이듬해인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501명이 사망해 사회가 다시 한 번 큰 충격에 빠졌고, 1999년 화성 씨랜드 화재로 23명이,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로 192명이, 2011년 우면산 산사태로 16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잇따랐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2월 18일 경주 마우나리조트 시설 붕괴로 대학생 등 10명이 사망했다. 4월 16일에는 인천을 떠나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해 수학여행을 가던 고교생 등 30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실종됐다.

특히 세월호 참사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온 나라가 안전을 외치며 대대적으로 안전관리 체계 점검에 나서게 됐지만 불과 6개월여만인 지난 17일 판교 환풍구 덮개 붕괴사고가 또다시 발생해 더욱 촘촘한 안전사고 방지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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