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수·진보 마찰때마다 애매한 태도
진영논리 아닌 국민 생명과 안전 우선돼야
1970~80년대 북에서 날려보낸 대남 선전용 전단인 소위 '삐라'가 어렵지 않게 발견됐다. 시골 초등학생들이 '삐라'를 줍기 위해 산으로, 들로 헤매고 다녔다. 여러명의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니다 한 친구가 삐라를 줍기라도 하면 모두가 흥분해 경찰서로 달려갔다. 전단을 파출소에 신고하면 공책과 연필을 선물로 줬기 때문이다. 학용품이 귀하던 시절 공책과 연필을 받는 재미에 기자도 친구들과 함께 해가 저무는줄도 모르고 산과 들을 뛰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당시 삐라에 적힌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박정희 정권을 비난하는 내용이겠지만….
당시 학교에서는 삐라를 주으면 내용을 읽지 말고 곧바로 파출소에 신고하라고 가르쳤다. 철저한 방공교육 덕(?)에 삐라를 주웠던 친구들은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바짝 긴장했다.
어렸을 때 즐겁지만은 않은 추억으로 잠재됐던 '삐라'가 요즘 우리 국민들을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다. 보수단체가 북으로 보내는 대북 전단이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사실 대북 전단이 뿌려지는 것은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그런데도 새삼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지난 10일 연천지역에서 날린 풍선을 향해 북측이 쏜 총탄이 우리 민간지역에 떨어지면서 촉발됐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원칙없는 태도에 국민들은 더 흥분하고 있다.
통일문제를 주도해야 할 장관은 처음에는 "전단 살포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 보장과 규제법 미비로 제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감에서 질타를 받자 "남북관계와 관련된 사안"이라며 슬며시 말을 돌렸다.
대북전단 문제로 보수와 진보단체가 오랫동안 많은 갈등을 빚어오는 동안에도 정부는 항상 한발 물러나 있었다. 괜히 끼어들어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오랫동안 갈등이 지속되는데도 정부는 뚜렷한 원칙도, 기준도 없었다. 그냥 큰 충돌이 없기만 바랐다. 다행히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어 그럭저럭 넘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국민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전단을 담은 풍선을 향해 북측이 총을 쏘고 실탄은 우리 국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떨어지는 실제 상황이 벌어졌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대북전단 보내기로 생존권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한창 바쁠 추수기에 생업을 포기할 만큼 그들은 절박했다. 얼마전 임진각에서 벌어진 보수단체와 주민들간의 마찰에서 보듯이 선량한 국민은 행동으로 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방관만 하고 있다. 마치 다른 나라 일인 듯…. 정부의 이런 모습에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대북전단을 통해 북한정권의 실상을 알리겠다는 보수단체의 충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 남측에서 펼쳐지고 있는 대북전단 논란이 국익을 위한 생산적인 진통일까 묻고싶다.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리느냐, 마느냐하는 민감한 시점에 북한체제를 비방하고 김정은 제1위원장을 모욕하는 내용의 대북전단이 과연 국익에 얼마만큼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혹시 대북전단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주고 도발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면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다.
정부 역시 대북전단 살포 묵인과 진영논리로 가두어 놓으려는 애매한 태도는 결국 남남 갈등만 더욱 부추길 뿐이다.
정부는 보수, 진보라는 진영논리가 아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가장 우선해야 한다. 국민이 우선되지 않은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승용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