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 출신인 리은경(85)씨는 29세이던 1958년부터 지금까지 56년째 인천 부평구 산곡동의 이른바 '영단주택'에 살고 있다. 그는 이곳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미군부대에서 항공정비사로 30년간 일했다. 집 인근에 있는 부평미군부대(애스컴)에서 10년, 평택미군부대에서 20년 동안 근무했지만 산곡동 영단주택을 평생 터전으로 삼고 평택과 인천을 오가며 아내와 함께 7남매(3남4녀)를 키웠다.

리씨가 부평미군부대에서 근무할 당시 영단주택지 근처 산곡시장에는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물건들이 넘쳤다. 미군 병사들을 상대하던 '양공주'들도 영단주택에 많이 살았다고 한다. 양공주들을 검사하기 위한 검사소도 영단주택지 안에 있었다고 리은경씨는 기억하고 있다.

리은경씨처럼 산곡동 영단주택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부평역사박물관이 최근 펴낸 학술총서 '부평 산곡동 근로자 주택'에 담겨 있다. 이 책은 부평역사박물관과 인천민속학회가 공동으로 올 3월부터 9월까지 산곡동 87 일대 영단주택지에서 진행한 역사·민속·건축 분야의 학술조사 결과를 엮었다. 산곡동 영단주택은 1940년대부터 일본 육군 조병창, 해방 이후 부평미군부대, 산업화 시대 공단에서 일한 노동자들의 애환이 서린 공간이다.

이번 학술조사를 통해 연구된 근현대 주거·건축문화사적, 생활문화사적 가치 또한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은 2010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됐다. 개발이 시작된다면 사라질 위기에 놓인다. 우뚝 솟아오를 아파트가 삼키게 될 것은 낡고 허름한 저층 주택이 아닌 한 도시의 역사 현장이자 삶의 흔적이다.

지난 19일 부평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산곡동 영단주택 학술회의서 근대사 연구자와 이 문제를 놓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이 지역 재개발에 대해 다소 인센티브를 주더라도 상태가 양호한 영단주택 몇 채를 기부채납 받아 보존해야 한다"며 "영단주택이 없어진다면 앞으로 부평의 도시 역사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인천시와 부평구가 의미있는 작은 공간이 주는 큰 역사적 울림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기를 바란다.

/박경호 인천본사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