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은 더는 불치병이 아닙니다. 치료 목표도 한층 더 희망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5~10일(현지시각) 일정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제56회 미국혈액학회(ASH) 연례회의에 참석한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은 최근의 백혈병 치료를 두고 이같이 요약 정리했다. 탁월한 효능의 백혈병 신약들이 지속적으로 개발되면서 머지않아 약물 복용을 통한 백혈병 완치 시대까지 바라보고 있다는게 이 분야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 이번 학회에서는 백혈병 치료제들의 우수한 치료성적이 확인돼 환자들에게 큰 희망을 줬다.

◇ 만성골수성백혈병, 약물 중단 후 '기능적 완치' 목표

만성골수성백혈병은 15년 전까지만 해도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지만 2000년 최초의 표적항암제 글리벡(성분명 이매티닙)이 개발되면서 약물치료로 평생 관리가 가능한 병이 됐다. 이후 타시그나와 같은 2세대 표적치료제들이 등장하고 치료 성적은 더 좋아졌다.

이번 ASH 연례회의에서는 만성골수성백혈병의 '기능적 완치(Treatment Free Remission.TFR)' 가능성을 확인한 임상 결과들이 눈길을 끌었다. 기능적 완치는 약을 먹지 않아도 정기검사로 병을 관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보통 암 유전자(BCR-ABL)가 거의 검출되지 않는 상태인 '완전분자유전학적반응 4.5단계(MR4.5)'를 일정 기간 유지하면 기능적 완치에 도달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다국적 연구팀의 임상 3상 5년 추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MR4.5 단계에 도달한 환자 비율은 타시그나 치료군의 경우 2명 중 1명 이상(54%)인 반면 기존 글리벡 치료군은 31%에 머물렀다. 또 타시그나 치료군은 10명 중 9명(92%)이 최초 투약 3개월 시점에서 암 유전자가 10% 이하의 상태로 떨어진 '조기분자유전학적반응(EMR)'에 도달해 글리벡 대비 우수한 임상학적 유용성을 입증했다.

뿐만 아니라 타시그나 치료시 백혈병이 '가속기(급성기)'로 악화하는 환자 수는 2명 미만으로, 글리벡 치료군(12명) 대비 우수했다.

현재 환자들에게 판매되고 있는 닐로티닙(타시그나), 이매티닙(글리벡), 다사티닙(스프라이셀) 등의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약물에 대한 효과를 비교한 연구결과도 관심을 끌었다.

15개의 임상 연구 논문을 비교 분석한 이 연구결과를 보면 타시그나가 48개월 시점에 타 약물 대비 가장 높은 MR4.5 단계를 달성해 유효성 면에서 1위를 차지했다. 65세 이상 환자를 대상으로 한 생존율 비교 연구에서는 타시그나 치료군이 평균 4.9년 이상으로 스프라이셀 치료군(평균 4.0년)보다 높다는 보고도 있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주 헌혈청(HEMORIO) 소속의 깔라 마리아 보큄파니(Carla Maria Boquimpani) 의학박사는 "백혈병 환자 중 60세 이상의 77%, 60세 미만의 52%가 각각 전문의 추천 아래 기능적 완치에 도전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면서 "이는 60세 미만이면서 기대 여명이 10년 이상 남아있는 환자들의 경우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기능적 완치에 도전하는 것을 치료 목표로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생존율 더 높인 4세대 표적항암제도 속속 개발

타시그나와 같은 표적항암제로도 암 유전자 억제 효과를 충분히 보지 못한 일부 환자들을 위해 노바티스가 4세대 표적항암제로 개발 중인 'ABL001'도 이번 학회에서 관심이 컸다. ABL001은 암 유전자가 증식하는 것을 선택적으로 막아주는 표적치료제로,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 중 나타나는 돌연변이들에 대응한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노바티스 생의학연구소의 앤드류 와일리(Andrew Wylie) 박사팀이 진행한 'ABL001 및 타시그나의 병용요법' 연구 결과를 보면 ABL001은 표적치료제로서 암 유전자를 선택적으로 공격했으며, 세포 내 화학적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ATP(Adenosine triphosphate)에서 돌연변이의 발생도 억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쥐를 대상으로 ABL001의 효능을 분석한 결과, ABL001과 타시그나의 병용요법이 재발 없이 '완전 종양 퇴화 현상(complete and sustained tumor regression)'을 지속적으로 유지한 것으로 관찰됐다.

앤드류 와일리 박사는 "결론적으로 ABL001은 동물의 몸속에서 암 유전자를 결합시켜 이들의 내성 발현을 방어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이런 효과를 바탕으로 만성골수성백혈병 및 급성림프구성백혈병(Acute Lymphoblastic Leukemia.ALL)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ABL001이 기존 표적치료제로 충분한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GSK가 새로 내놓은 만성림프구성백혈병치료제 오파투무맙(Ofatumumab)의 재발성 만성림프구성백혈병에 대한 효능도 입증됐다. 47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오파투무맙 투약군과 위약군을 비교한 결과, 투약군에서는 평균 무진행 생존기간(PFS)이 28.6개월로 나타난 반면 위약군은 15.2개월에 그쳐 임상적 이점이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밖에도 미국 펜실베이니아 페럴먼 의과대학 소아과 스테판 그루프(Stephan A. Grupp) 교수팀은 환자의 몸속에 들어 있는 '사냥꾼 세포(T세포)'로 암세포를 공격하게 해 소아백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면역 치료법에 성공했다고 발표해 큰 관심을 받았다.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김동욱 교수는 "이제 백혈병은 완치에 근접해 가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라며 "그런 만큼 백혈병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달라져야 하고, 백혈병을 진단받은 환자들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를 갖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 용어 설명

▲ 백혈병 = 백혈병은 혈액에 생기는 암이다. 우리 몸의 뼈 중심 부분에 위치한 골수는 백혈구·적혈구·혈소판 등의 혈액 세포를 생산하고 성숙시켜 혈액으로 방출하는 장소인데, 여기서 백혈구에 이상이 생겨 지나치게 많은 비정상 백혈구 세포가 증식할 때 이를 백혈병이라고 한다.

백혈구 암세포가 증식하기 시작할 때 초기에 이를 막지 못하면 결국 암세포가 골수를 가득 채우고 말초 혈액을 통해 전신으로 퍼진다. 백혈병 세포가 몸 안의 주요 장기에 침범하면 장기 기능의 이상이나 소실을 가져와 경우에 따라 다른 종양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때 세포의 분화 유형에 따라 골수의 백혈구 생성조직이 무제한으로 증식하는 골수성 백혈병과 림프구 생성조직이 무제한으로 증식하는 림프구성백혈병으로 나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