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드물고 도움 청할곳도 없어
CCTV는 큰 길가뿐 골목 무방비
오원춘과 박춘봉, 끊임없이 이어지는 강력범죄에 귀갓길 여성들의 공포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경인일보 사회부 공지영 기자가 흉악사건의 무대가 됐던 이들 지역의 밤길을 여성의 눈으로, 마음으로 살펴봤다. ┃편집자 주
20일 오후 10시께 수원 매교동의 한 주택가. 골목 입구를 무심코 들어서려다 걸음이 딱 멈춰졌다. 단독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다란 골목길을 비추고 있는 건 희미한 가로등 불빛 하나뿐, '과연 혼자 이 곳을 지나가도 괜찮을까' 하는 두려움이 솟구쳤다.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발걸음을 옮겼지만 가로등은 시야확보에도, 불안감을 덜어내는 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매교동과 교동, 고등동, 지동 등 인근 지역의 모든 골목길은 담벼락마다 빈 공간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주차된 차들이 빼곡했다. 주차된 차량의 그림자로 어둠은 더욱 심했고, 차들 사이에서 누군가 불쑥 튀어나오는 건 아닌지 괜한 상상이 꼬리를 물었다.
인근 상점들은 심야가 아닌데도 문을 닫은 상태였고, 후미진 위치 탓에 24시간 편의점도 드물어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이날 4개 동 일대 골목길을 돌면서 눈에 들어온 CCTV 숫자는 고작 10여개. 그나마 비교적 통행량이 많은 큰 길가에 주로 설치됐을 뿐 골목길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골목길만 골라 매교동에서 교동으로, 팔달산까지 걸어서 시신 일부를 유기한 박춘봉의 흔적을 CCTV로 찾을 수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밤길을 걸으며 느꼈던 가장 큰 공포는 인적이 드물다는 점이었다. 주택가 밀집지역인데도 맹추위 때문인지 골목길은 물론, 큰길에서도 길을 가다 마주친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수원시는 지난 18일 구시가지의 24시간 편의점 안전지킴이, CCTV 설치 추진 등 각종 대책을 동원해 강력범죄를 예방하겠다고 밝혔지만, 기자가 둘러본 주택가 밤길에까지 손길이 미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우범지대로 꼽히는 이들 지역은 여성은 물론, 건장한 남성들도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을 만큼 방범의 사각지대로 방치돼 있었다. 범죄피해 시 즉각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교동의 한 슈퍼마켓 운영자 김모(56·여)씨는 "해만 지면 지나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인 데다, 가게 안에 있어도 무서워서 10시쯤이면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공지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