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도 프라이버시가 있어요.” 26일 오후 1시께 수원 팔달산을 산책 하던 황모(22)씨는 관광안내소 옆에 설치된 ‘진달래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러나 소변을 보고 나오던 황씨는 경악했다. 통유리로 된 화장실 문 사이로 자신의 은밀한 모습이 여자친구에게 훤히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황씨는 “용변을 보는 모습을 본의 아니게 본 여자친구도 어색해 한 건 마찬가지”라며 “아무리 남자 화장실이라도 문을 투명하게 만들어 놓는 것은 너무 배려가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다른 남자 화장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안산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의 한 화장실은 뻥 뚫린 남자화장실 정면에 자판기와 벤치가 설치돼 있다.

이 때문에 남·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료수를 마시는 동안에도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가 용변을 보는 뒷모습을 지켜보는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진다. 이처럼 경기도 내 다수의 남자 화장실이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는 구조로 설계돼 사적인 공간을 노출당한 남성들과 본의 아니게 장면(?)을 봐야 하는 여성들 모두 불쾌하게 했다.

한국화장실협회에 따르면 공중, 간이 화장실 등의 설계는 지난 2004년 제정된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을 따른다. 그러나 이 법에는 변기 대수 설치 기준, 장애인화장실 및 기저귀교환대 설치 의무 등의 사항이 명시돼 있을 뿐 화장실 구조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다.

이 때문에 도내 1천207개 공중화장실은 자세한 내부구조 설계 없이 도면상 정해진 위치에 설치됐다. 이에 지하철역이나 주민센터 등 공공 화장실은 물론 도청이나 수원시청 등 대형 관공서 화장실까지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는 구조로 시민들의 불편함을 자아내고 있다.

전국단위 남성인권단체인 한국 남성의전화 관계자는 “지어진 화장실의 구조변경이 어렵다면 최소한 입구에 칸막이라도 설치해야 한다”며 “공중화장실 법에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조항을 추가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 지자체 관계자는 “건물마다 용도와 형태가 다른 데다 좁은 공간에 많은 변기를 설치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프라이버시까지 고려하기는 어려웠다”며 “신설되는 화장실은 가림막 등을 설치하는 등 구조에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권준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