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십 년 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 못한 채 피해를 감수해 온 사격장 주변 42개 마을 1만2천여명의 주민들은 지난해 11월에서야 사격장 폐쇄를 요구하고 나섰다. 사진은 무분별한 사격으로 논밭 곳곳에 떨어져 방치된 탄피를 한 주민이 주워 집 한 편에 걸어둔 모습. 포천/최재훈기자
고통
창 깨지고 지붕 날아가고 터전 오염

분통
안보에 강요당한 희생 ‘정부 나몰라라’

울화통
머리에 띠 두르고 대책위원회 발족

세계 최대 미군전용훈련장인 포천 영평사격장이 들어선 지 60여 년. 6·25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이곳 주민들에게 전쟁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영평사격장은 총 면적이 1천352만여㎡로 화성 매향리 미 공군사격장(현재 평화생태공원 조성중)의 7.7배, 전북 군산 직도사격장의 114배에 이르는 규모다. 뿐만 아니다. 

이곳 주변에는 우리 군이 사용하는 3곳의 사격장이 위치하고 있다. 탱크와 헬기, 전투기 사격 훈련장인 ‘승진사격장’(면적 1천987만4천여㎡)과 ‘원평사격장’(면적 2천112만여㎡) 등 대규모 사격장이 1년 내내 포탄을 쏟아붓고 있다.

훈련은 밤낮 가리지 않고 이어진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 마을 주민들은 국가안보라는 이유 때문에 입을 다문 채 고통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고통에 대한 보상도 없었다. 오히려 주변에 각종 혐오시설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에게 또 한번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 같은 ‘전쟁 아닌 전쟁’의 고통 속에 마을 사람들은 그저 전쟁이 그칠 날만 기다릴 뿐이다. 미군 당국은 물론 우리 정부도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침묵만 하고 있다.

전쟁의 아픔이 채 아물기 전인 1954년 사격장이 처음 생길 당시 ‘평화’라는 명분에 내 땅을 말없이 내줬던 주민들은 차라리 그때 목숨을 걸고 막았어야 했다며 후회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머리 위로 쏟아지는 포탄을 보며 자란 주민들은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됐다. 이들에게 소망이 있다면 ‘이 고통을 더 이상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들은 이제서야  머리에 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왔다. 사격장 주변 42개 마을 주민들은 지난 2014년 11월 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1년 365일 중 340일은 포성이 멈추지 않는 곳. 수시로 날아오는 유탄에 유리창이 깨지고, 헬기의 바람에 축사 지붕이 날아갔다. 중금속 탄 등 각종 탄피가 농토와 하천에 버려지면서 마을 곳곳은 이미 중금속에 오염됐다. 그러나 정부와 미군은 ‘포탄소리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소리’라고 생각하란다.

60여 년을 포성의 고통속에 살아온 주민들에게 평화가 무엇일까. 이들은 이제서야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자식들에게 고통을 물려주지 않기 위한 한 맺힌 울부짖음이다.

주민들은 반 백 년이 넘는 고통을 인내하고서야  비로소 외치기 시작했다. 이들의 외침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그래도 이들은 외치려고 한다.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달라고…. 

포천/윤재준·최재훈·권준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