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하가 경기침체 장기화에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더해진 한국경제에 회복의 불씨를 살려줄지 초미의 관심사다.

금리 인하는 소비와 투자에 온기를 불어넣어 '저성장 저물가'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퍼지고 있다.

그러나 가계부채 증가와 유동성 함정 등 금리 인하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 역시 크다.

◇생산·투자·소비·물가 모두 비상등 속 금리인하

금리 인하 결정은 최근 생산과 소비, 투자 등 각종 경제지표가 일제히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내려졌다.

지난 1월 통계청의 산업활동동향에서 전체 산업생산은 전월보다 1.7%, 광공업생산은 3.7% 각각 감소했다. 각각 2013년 3월, 2008년 12월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소비와 투자 역시 전달보다 각각 3.1%, 7.1%나 감소했다.

경상수지는 1월까지 35개월째 흑자를 냈지만 내수 부진과 수입감소에 따른 불황형 흑자 구조에 빠진 모양새다.

지난달의 물가 상승률은 0.5%이지만, 담뱃값 인상 효과를 제외하면 사실상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마이너스'로 꺾였다.

생산자물가 상승률도 지난해 8월 이후 마이너스 행진을 벌이다가 지난 1월에는 -3.6%로 추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디플레이션 초입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면서 금리 인하에 대한 목소리가 힘을 얻어갔다.

정부 측도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가 탄력을 받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까지 "통화당국의 적극적 대처가 요구된다"고 주문하는 등 정치권의 압박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금리 인하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결국 금리 인하는 이 같은 지표를 끌어올리는 데 미치는 영향에 따라 성적표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두 차례 인하를 했기 때문에 지금 이만큼이나마 버티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실물 경기 지표가 계속 악화되는 상황에서는 인하가 반드시 필요했다"고 말했다.

◇소비 진작 효과…"투자 진작은 구조개혁 병행돼야"

금리 인하는 위축된 소비 및 투자 심리를 완화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낙관론이 나오고 있다. 디플레이션 예방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감도 물론이다.

우선 소비의 경우 기준금리 인하로 부동산 시장이 활발해져 주택가격이 올라 자산효과가 커지면 소비가 진작될 수 있다.

가계부채 감소 효과가 나타나 소비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지금 가계부채의 총량 규모를 보면 81% 정도가 생계형 대출과 사업자금 대출, 만기대출금을 갚기위한 대출로 구성돼 있다"면서 "금리 인하로 원리금과 이자 상환 부담을 줄어들어 가계부채가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에서도 다소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투자 여력이 없는 기업의 경우는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금리 인하와 함께 구조개혁에서 성과를 내야 투자를 실질적으로 유인할 수 있다고 주문하고 있다.

특히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덜어내야 기업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오 교수는 "각종 규제와 최저임금 인상론 등으로 기업 투자가 위축돼 있는 상황"이라며 "구조개혁이 동반돼야 실질적인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 인하로 환율이 오르게 되면 수출 증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지속되는 엔저 현상과 유로존의 양적완화(QE)에 따른 유로화의 약세로 일본 및 유럽 제품들과 경쟁하는 국내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환율 인상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직 해외의 경우 금리인하에 대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은 분위기다. 금리인하 효과가 나타나려면 6개월은 필요하다는 게 일반론인데, 18개국이 지난해 말과 연초에 집중적으로 금리를 인하했기 때문이다.

다만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달 양적완화를 실시하면서 올해 유로존 경제성장률 전망을 1%에서 1.5%로 높이고, 2016년도에는 1.5%에서 1.9%로 높이는 등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 유동성 함정 우려…가계부채 악화 가능성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경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있다.

우선 현재 유동성이 부족해서 소비나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게 아니라 소비자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돈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려도 소비나 투자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노후 대비 등을 위해 씀씀이를 최대한 줄이고 있다. 지난해 전국 가구의 평균소비성향은 72.9%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3년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비성향 하락은 모든 연령층에서 나타났고 50대 가구주 가구는 가구주 연령별 소득이 모든 연령층에서 가장 많았지만 소비성향은 가장 낮은 60대 가구주 가구와 비슷했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은 가구도 불안한 노후 때문에 소비보다는 저축을 한다는 의미다.

기업 역시 막대한 사내 유보금을 쌓아두고 있지만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다. 통계청의 1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설비투자는 전월보다 7.1%나 감소했다.

실제로 한은이 지난해 두 차례 기준금리를 내렸고 시중유동성은 상대적으로 풍부해졌지만 실물경기는 둔화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돈을 풀어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이 우려되는 것이다.

특히 기준금리가 내려 시중금리까지 함께 하락하면 가뜩이나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는 가계부채를 더 늘릴 수 있다.

지난 2월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566조원으로, 한 달 전보다 3조7천억원 늘어나 2월 기준으로 사상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같은 달 주택담보 대출은 4조2천억원이 늘어나 예년 2월의 3배가 넘는 규모로 증가했다.

당국은 가계부채에 대해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가계부채가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면 한국 경제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는 데 이견은 없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기준금리로 득과 실이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큰 효과가 없을 것이다"면서 "기업의 투자와 국민의 소비가 미약한 원인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금리 인하로 풀린 돈은 실물이 아니라 부동산으로 가고 가계부채만 심각해지고 원리금 상환 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