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 후 정품·정량을 최저가로 판매해온 주유소라고 억울함을 항변했지만, 국내 유일의 공공 석유품질 검사기관인 석유관리원의 판정 결과를 뒤집을 방법은 없었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유사석유 판정 과정의 문제점 등을 제기하며 다툼이 이어지던 중 느닷없이 국세청의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시작됐고 결국 65억원이 과세됐다.
이어 검찰 수사가 진행돼 가족이 기소되기도 했다. 후일 주유소를 단속했던 석유관리원 직원이 유사석유 업계 브로커로부터 억대의 뇌물을 받아온 사실이 드러나기까지 했지만, 결국 단속된 서울의 주유소는 폐업되고, 또 다른 사업장인 부천 럭키주유소는 공매 위기를 맞는 등 ‘악몽’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22일 서울 영등포구와 석유관리원 등에 따르면 석유관리원 수도권지사는 지난 2009년 7월 6일 서울 강서주유소에서 판매 중인 경유 제품에 대한 품질검사를 실시, “휘발유와 등유가 25% 혼합된 유사석유 제품”이라고 판정했다.
이에 주유소 대표 박씨는 단속 한 달 전 주유기를 교체한 후 경유 164만ℓ를 이상 없이 판매하는 등 ‘제품을 혼합할 이유도, 실수로 혼합될 이유도 없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특히 단속과정에서 시료를 담아간 용기 표면이 등유로 오염돼 있는 점을 수상히 여겨 국민권익위원회에 탄원서를 제출했고, 이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조사가 이뤄졌다. 조사과정에서는 한술 더 떠, 해당 시료 보관 용기가 석유관리원에서 ‘폐기’된 사실까지 새롭게 확인됐다.
그 무렵, 더 큰 위기가 닥쳤다. 같은 해 8월 26일 강서 주유소와 부천 럭키주유소 등 박씨의 2개 사업장에 대해 전격적인 세무조사가 시작된 것.
일개 주유소를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로는 이례적으로, 서울지방국세청과 중부지방국세청 조사국이 각각 5개월여 동안 두 주유소를 담당하는 고강도 조사 끝에 2010년 3월 부가가치세 등 65억원의 세금이 부과됐다. 시련은 계속됐다.
2010년 6월 서울남부지검과 부천지청에서 조세범 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가 진행됐고, 두 달여만에 무혐의 처분이 내려져 한숨 돌렸다 싶은 것도 잠깐, 재수사 끝에 강서주유소 사무를 담당하던 누나가 기소됐다.
숨돌릴 틈 없이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가 잇따라 진행되면서 정작 유사석유 판정 번복에 매달릴 여력이 없어진 박씨는 결국 2010년 수도권 첫 무폴 주유소인 강서주유소를 폐업하며 국세청 과세에 대한 재판에 몰두했다.
와중에 지난 2013년 5월, 강서주유소를 단속했던 석유관리원 손 팀장이 유사석유 업자들로부터 단속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뒷돈을 받은 혐의(뇌물)로 구속·기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손 팀장이 뇌물을 받은 것은 2008년부터 2011년 사이. 자신의 주유소가 단속된 시점과 겹친다는 사실에 억울함을 풀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됐다고 기대했지만,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검찰에 기소된 누나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판결을 받았고, 부가가치세 등 부과처분취소 판결은 결국 대법원까지 모두 패소했다. 부천 럭키주유소는 공매를 앞두고 있다.
■수도권 첫 무폴주유소 탄생에서 폐업까지
▲ 2000년 6월 서울 영등포에 강서 주유소라는 이름으로 개점
▲ 2007년 10월 최저가·정품·정량 주유소로 TV소개
▲ 2009년 7~8월 한국석유관리원 단속, 국민권익위에 탄원서 제출,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
▲ 2009년 8월 영등포구청 과징금 처분, 국세청 세무조사(부천 럭키 주유소 포함)
▲ 2010년 3월 국세청 65억원 과세
▲ 2010년 6월 검찰조사
▲ 2010년 7월 강서주유소 폐업
■무폴주유소란
국내 4대 정유사의 어느 폴사인(pole sign·간판)도 사용하지 않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 정유사 제품만 판매하는 폴사인 주유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끌어왔다. 수도권에서는 2000년 6월 서울 영등포구에서 강서주유소가 처음 문을 열었다.
/김민욱·강기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