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간 선거전, 어느새 ‘야·야 다툼’으로 흘러
서로 물고있는 모습 조개에 부리잡힌 도요새 같아
밋밋할 것 같던 4·29 재보선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예정에 없던 인천 서구강화을 선거가 추가되면서 판이 커지기도 했지만, 정동영·천정배 전 의원의 탈당과 출마로 얘깃거리가 풍성해진 까닭이다.
옛 통합진보당 해산에 따라 치러지는 선거에 걸맞게, 당초 여야는 각각 종북 책임론과 경제 정당론을 내세워 표심을 공략하려 했다. 새누리당으로선 초록은 동색이라며 새정치민주연합과 옛 통진당을 한데 엮고 싶었을 테고, 새정치연합은 민생을 파고들어 색깔논쟁과 선을 긋고 싶었을 것이다. 나름 이유 있는 전략이요 콘셉트였겠지만 구경꾼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뻔한 선거, 정당과 해당 지역 일부 유권자들에게나 관심을 끌 법했던 이번 선거를 일거에 따끈따끈하게 만든 건 두 정치인의 행보다. 야권 텃밭인 광주에 무소속 출마한 천 전 의원의 득표력이 최대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정 전 의원의 서울 관악 출마가 이슈의 꼭짓점을 차지했다.
두 사람 모두 한때 대한민국 야권을 대표했던 정치인이지만, 특히 정 전 의원을 둘러싼 논란은 밋밋하고 심심했던 ‘다큐멘터리’ 선거를 하루 아침에 ‘예능’으로 바꿔 놓았다. 예능에는 말 잔치가 빠질 수 없는 노릇, 재보선 전패 위기에까지 놓인 새정치연합이 정 전 의원을 ‘철새’라 비난하고 나서자 정 전 의원은 새정치연합을 ‘먹새’라고 되받았다.
새정치연합이 정 전 의원을 철새로 공격하는 건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는 전북 전주 덕진에서 첫 국회의원이 된 뒤 대선 실패 후엔 정계 은퇴 예상을 뒤엎고 서울 동작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09년 재보선 때는 전주 덕진으로 되돌아가려다 당시 민주당이 출마를 반대하자 무소속으로 나섰고, 19대 총선 때는 서울 강남을에 출마해 고배를 마셨다. 선거 때마다 지역을 바꾼 것도 그렇지만, 일곱 차례 정당을 바꾸는 동안 네 번은 탈당, 두 번은 창당, 한 번은 당을 깼으니 철새도 이렇게 똑 떨어지는 철새가 없다.
정 전 의원의 반박도 그의 정치 이력만큼이나 노련하다. “정당을 이동한 걸 철새라고 하면 철새가 맞다”면서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앉아 있는 몸이 무거워서 날지도 못하는 기득권 정치인은 먹새냐”고 맞불을 놨다. 몸담았던 새정치연합을 기득권을 챙기느라 배가 불러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먹새로 지칭해 자신의 탈당을 정당화한 셈이다. 선거를 여·야간 대결보다는 김무성과 문재인, 정동영의 싸움으로 규정해 자신을 이슈의 중심에 놓으려는 솜씨도 발휘했다.
재미있는 것은 여·야간 사활을 건 싸움이어야 할 선거가 어느새 야·야간 다툼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재보선이 치러지는 4개 선거구는 각각 야당이 3곳, 여당이 1곳을 차지하고 있었고 지역별 바닥 민심도 결코 여권에 유리하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야권의 자중지란을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보는 여권으로선 감지덕지 표정 관리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 ‘어부지리’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13대 대선에선 김영삼·김대중·김종필의 분열이 노태우의 당선으로 이어졌고, 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선 여론조사 1·2위였던 문용린·고승덕이 난타전을 벌인 끝에 3위 후보 조희연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정 전 의원의 탈당과 출마에 대한 평가는 전적으로 유권자들의 몫이다. 다만, 서로 물고서 놓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야권의 모습은 ‘철새’나 ‘먹새’라기보다는, 조개에 부리가 잡힌 바닷가 도요새에 가깝다.
/배상록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