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들 경영난에 ‘폐업할까 말까’ 절박한 처지
책방이 문 닫는 도시 ‘책의 수도’ 될수 없어
개막 맞춰 ‘책 읽기 시작’ 먼저 할 일이다


꼭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 책의 수도’ 개막식이 오는 23일 인천에서 열린다. 유네스코가 내년 4월 22일까지 1년 동안 세계 책의 수도로 선정한 인천시는 그 슬로건을 ‘읽어요, 그럼 보여요’로 정했다. 누가 지었는지 참 예쁜 말이다. 뜻도 참 깊다. 지난 2월 하순, 음력으로 새해를 맞이하면서 ‘책의 수도에서 살게 되는데 그 시작점에서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 고민하다 책장에 장식처럼 꽂혀 있던 황석영의 장편 대하소설 ‘장길산’을 꺼내 들었다. 그냥 별생각 없이 시작한 장길산 읽기에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인천의 미래 가치’가 눈에 들어왔다.

소설의 주요 무대는 황해도 일대다. 이야기 흐름은 한양 도성과 그 주변을 바쁘게 오간다. 인천도 빼놓을 수가 없다. 강화도와 교동 섬이 한양과 해주 사이의 물류 요충지로 그려진다. 한반도 분단상황에서는 쉽사리 짐작할 수 없는 강화와 교동의 역할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한반도 통일 이후의 강화와 교동의 모습을 미리 짐작하기에 장길산 만한 게 또 있을까 싶다. 한강으로 접어들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곳도, 서울에서 물길로 황해도나 평양 쪽으로 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곳도 강화와 교동이다. 백령도나 연평도 지역은 지금 뱃길로 4시간씩 걸려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통일이 되면 황해도 쪽에서 힘들이지 않고 갈 수가 있다. 장길산 속에는 색다른 인천의 가치가 있었다. 바로, ‘읽어요, 그럼 보여요’였다.

‘책의 수도 인천’을 맞아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읽고 저마다 더 많은 가치를 찾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 읽는 문화가 더 넓게 퍼져야 한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손쉽게 책을 접하고, 읽고, 이야기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문화적 수준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인천이 맞이한 책의 수도 1년이 그 토양을 다지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이런 바람이 제대로 들어맞을 것이라고는 솔직히 확신할 수가 없다. 인천시 행정은 그동안 ‘문화’보다는 ‘경제’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짙었다. 경제자유구역이란 명칭부터가 그 점을 웅변한다. 요새는 아예 인천시청 내에 ‘경제부시장’이란 직제까지 두었다. 행정 시스템의 기조가 돈 돈 돈, 돈 타령에 맞춰진 셈이다.

세대를 세 번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1924년에도 인천에는 온통 돈 타령이었던 모양이다. 당시 발간되던 ‘개벽’이란 잡지는 ‘군자는 반드시 어진 마을을 택하여 기거한다는데 인천은 이와 반대로 연애소설이나 유행잡가 한 권도 사볼 만한 책방 한 곳이 없고, 돈이라면 목숨을 내기한다’는 식의 르포 기사까지 실을 정도였다. 이 기사는 그러면서 ‘산 사람의 눈깔이라도 뽑아 먹을 수만 있으면 덤벼 보려고 껄떡껄떡하는 고리대금 아귀쟁이들의 발호하는 꼴을 보고는 참말 대학목약을 찾기에 겨를이 없을 모양’이라고 비꼬았다. ‘대학목약’은 당시 유명했던 안약 이름이다. 돈만 밝히는 인천 사람들을 보자니 눈병이 날 지경이라는 뜻이다. 인천에 만연한 ‘돈 밝힘증’의 이면을 신랄히 꼬집은 것이다.

90년이나 지난 지금의 인천은 어떤 모습일까. 서점들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을지 말지를 고민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내몰려 있다. 서점이 문을 닫는 도시가 ‘책의 수도’일 수는 없다. ‘책의 수도’는 구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책을 읽고, 그 속에서 나름의 가치를 찾아낼 수가 있을 것인가. 모두가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도시는 구성원 모두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책 읽기, 일단 시작하고 보자. 그것이 우리가 책의 수도 개막에 맞추어 우선 할 일이 아니겠는가.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