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8월, 주한미군 사격장인 포천 영평사격장에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학생 12명이 난입해 전차에 올라타 성조기를 불태우는 등 시위를 벌인 적이 있었다.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미군 사격장은 물러가라는 것이 그들 주장의 요지였다.

그러나 당시 안보를 먼저 생각했던 주민들은 오히려 학생들의 ‘철없음’을 탓하며 밥 한 그릇, 물 한 사발 내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주민들은 학생들을 직접 나무라며 ‘그러면 못쓴다’고 주의를 주기도 했단다.

이런 주민들이기에 포탄이 떨어지는 공포와 극심한 소음피해를 60여 년이나 참아낸 것이 아닌가 싶다. 또 그렇기에 이제는 좀 사람답게 살아보겠다는 그들의 외침이 더욱 진정성 있게 들린다.

다행히도 이들의 진정성을 느낀 것이 경인일보뿐만은 아닌 모양이다. 포천시 의회와 경기도 의회, 도지사와 국무총리, 국회와 여당 원내대표까지 수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포천 주민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지난 10일 비로소 버나드 샴포 미8군 사령관이 직접 사과의 뜻을 전하고 안전대책 강구 및 야간사격 금지를 약속했다.

전례를 따져봐도 미군 사령관이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이렇게 빠른 시일 내 해결책을 마련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하지만 이처럼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문제가 하루아침에 개선될 것인지에 대해선 일말의 물음표가 남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샴포 사령관이 약속한 안전대책 방안은 이미 예전에도 수차례 미군의 입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언급됐던 부분이다. 실제로 밤 10시 이후 야간사격을 금지하겠다는 약속도 여러 차례 반복됐지만 지켜지지 않는 것 중 하나다.

결국 답은 미군 측의 실천 의지가 얼마나 되느냐에 달려 있다. 이례적으로 사령관이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선 만큼 기대를 갖고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봐야겠지만, 정부차원에서 미군의 약속이행 여부를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할 기구가 없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유명무실로 전락한 포천시와 미8군 간의 협력 MOU가 제대로 운영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이 과정에서 상급기관인 도가 나서 주민들의 목소리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군이 내놓은 이번 대책 역시 동족방뇨(凍足放尿) 식의 허울 뿐으로만 남을지도 모른다.

/권준우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