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눅 안들고 “기적 이루자”며 패배감 떨쳐낸 결과
잘못된 관행 안고치면 대형사고 또 당할 수도
“우승을 하지 못해도 얻은 것은 있습니다. 지나고 나니까 더 많은 것이 보이네요.”
한국에서 남자 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만큼 많은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스포츠인은 없다. 신 감독은 V리그 2014~2015시즌 팀을 정규리그 1위에 올려놓으며 실업리그를 포함해 19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시킨 명장이다. 그러나 19차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화재는 막내구단 OK저축은행에 패했다. 신 감독이 패한 건, 이번이 3번째라고 한다. 그런 명장이 패배에 대해 얼마나 낯설었을까. 하지만 그는 “우승을 못 해도 얻은 게 있다”고 한다. 바로 선수들과 자신이 7년 연속 챔프전 우승을 하면서 생긴 ‘교만에 대한 습관’이라고 했다. 즉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지나친 나머지 자만감에 모두가 도취 됐다는 것이다.
1등 만이 살아남는 스포츠에 있어 습관은 무서운 전염병과도 같다. 삼성화재처럼 늘 우승하는 팀은 자신감이 넘쳐나기 때문에 하위 팀들은 그들을 쉽게 뛰어넘지 못한다. 현대캐피탈이나 대한항공, LIG손해보험이 늘 우승 문턱에서 삼성화재의 벽에 눌려 승리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올해 프로배구는 달랐다. 창단 2년밖에 안된 신생팀 OK저축은행이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럼 막내구단인 OK저축은행이 어떻게 우승할 수 있었을까. 이들에겐 형식적인 습관이 없었다. 아직 2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서 선배팀들 에게 결코 주눅이 들지 않았고, 젊은 선수들은 패배의 쓴맛을 보면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최연소 사령탑 김세진 감독은 선수들에게 ‘이기고 싶다’는 의욕을 늘 가슴속에 품게 했다. 오죽하면 이들의 유니폼 상의에 ‘기적을 일으키자’는 문구를 넣었을까. 이런 이유로 어린 선수들은 패배의 습관을 떨쳐버렸고, ‘경험 부족’을 패기로 당당히 맞섰다.
OK저축은행은 ‘We Ansan!’ ‘기적을 일으키자!’ ‘안산에 용기를!’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걸고 이번 시즌을 치렀다. 안산은 1년 전인 지난해 4월16일, 지워지지 않을 아픔인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대다수가 살았던 도시다.
지역 주민들이 슬픔에 잠겨 있던 지난해 7월 OK저축은행은 ‘우리는 안산이다’는 의미의 새 슬로건 ‘We Ansan!’을 발표했다. 슬로건의 ‘We’와 ‘An’을 같은 붉은색으로 칠해 ‘위안’이 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올 초에는 모기업을 상징하던 기존 엠블럼을 아예 ‘We Ansan!’으로 바꾸면서 안산 시민들을 가슴속에 새기는 등 다른 프로팀들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했다.
우리는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학업에 열중하는 학생들은 오전부터 야간까지 학업에만 몰두한다. 이는 하루, 1개월, 1년 동안 반복되는 습관에 사로 잡힌다. 직장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1년을 그렇게 보낸다. 그러면서도 후회한다. ‘왜 습관을 버리지 못했을까’라고 말이다.
1년 전 우리는 잊지 못할 큰 사건을 눈앞에서 지켜봤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를 목격했다. 사고 1년이 지난 현재에도 우리 안팎에는 잘못된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사회는 여전히 안전불감증에 묻혀 있고, 언제 어디서 인재로 인한 대형사고가 발생할 지 모른다. 어린 학생들의 넋에 대한 위로는 말뿐이다. 이제라도 잘못된 습관을 바꾸자. 남을 비판하기보다 이해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신창윤 체육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