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구 국무총리가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완구 국무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원외교비리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난 9일 이후 꼭 12일만에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성완종 자살' 사건이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불거진 것은 성 전 회장이 숨진 이튿날인 지난 10일.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직전 대통령 최측근 인사들에게 금품을 줬다고 주장한게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보도되면서이다.

그렇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이완구 총리가 논란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당시 성 전 회장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김기춘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서는 각각 10만달러와 7억원을 줬다며 구체적인 상황을 적시했지만, 이 총리의 경우에는 이름만 등장했을 뿐 돈을 전달했다는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총리 역시 "성 전 회장과는 충청 출신이라는 인연 외에 친하지 않다"며 성 전회장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 중요한 근거로 지난 2000년 성 전 회장이 주도한 '충청포럼'에는 가입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충청권을 대표하는 정·재계 유력 인사인 두 사람이 오래전부터 각별한 사이였다는 세간의 의혹을 일축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직전 이 총리에게 3천만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한 내용이 알려지면서 의혹이 금품 수수 논란으로 불거졌다.

또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전 태안군의회 의원들을 만나 이 총리에 대한 서운함을 표했고, 이 총리는 태안군의원들에게 15차례나 전화를 한 사실도 드러나면서 모든 관심은 이 총리에게 쏠렸다.

13일부터 시작된 국회 대정부질문은 이 총리에 대한 청문회를 방불케 했고, 거짓말 논란까지 겹치면서 이 총리는 코너에 몰렸다.

이 총리는 13일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지난 2012년 12월 대선 당시 혈액암으로 투병 중이어서 대선에 관여하지 못했다"고 말했으나, 당시 이 총리가 지원 유세에 참여했다는 사진이 공개돼 이 총리를 곤혹스럽게 했다.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시신 상의에서 발견된 메모가 11일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 메모에는 '허태열 7억, 홍문종 2억, 유정복 3억, 홍준표 1억, 부산시장 2억, 김기춘 10만불, 이병기, 이완구'란 글자와 '김기춘 10만불'이란 글자 옆에 '2006.9.26日 독일 벨기에 조선일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조선일보 제공
이에 대해 이 총리는 "당에서 충남 명예 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해 2∼3차례 유세장에 갔지만 투병 중이어서 지원 유세를 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했다.

또 이 총리는 충청포럼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지만, 충청포럼이 총리 인준 과정에 이 총리를 지지하는 내용의 현수막 수천장을 충청지역에 내거는 등 이 총리를 적극 지원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 총리는 돈을 받은 증거가 나오면 총리직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내놓겠다"면서 초강수를 던졌지만, 논란은 식을 줄을 몰랐다.

여기에 성 전 회장이 2013년부터 20개월 동안 23차례 이 총리를 만났다는 내용의 비망록도 공개됐다.

2013년 4월 재선거를 앞두고 성 전 회장이 이 총리의 부여 선거사무소를 방문했고, 성 전 회장의 차안에 있던 '비타500 박스'를 이 총리와 성 전 회장이 만나는 칸막이안 테이블에 올려놓고 왔다는 성 전회장 측 인사의 진술도 나왔다.

무엇보다 이 총리가 2013년 4월 재선거를 앞두고 성 전 회장을 독대했는지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 총리가 성 전 회장을 독대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성 전 회장이 이 총리에게 3천만원을 전달했다는 진술이 보다 개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성 전 회장의 전 운전기사 등으로부터 "선거사무소에서 두 사람이 방에서 따로 만났다는 '증언'이 잇따라 나오면서 상황은 이 총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그렇지만 이 총리는 당시 성 전 회장을 만났는 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 난다면서도 성 전 회장을 독대한 적이 없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특히 정치권을 중심으로 거세게 제기되고 있는 사퇴 압박에 대해 "메모나 일방적인 주장만 갖고 거취 문제를 결정할 수 없다"며 "흔들림 없이 국정을 수행하겠다"고 일축했다.

그렇지만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순방 이후 분위기가 급변했다.

박 대통령이 출국 직전 일정을 변경하면서까지 김 대표를 만났는데, 순방을 앞두고 국정 2인자인 이 총리가 아닌 김 대표를 만났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의혹을 해소할 수 있다면 어떤 조치도 검토할 용의가 있다"며 이 총리 거취에 대해서는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일단 순방 기간 국정 2인자에게 물러나라고 할 수 없는 만큼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 이 총리 경질을 단행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이었다.

여론은 갈수록 악화됐고, 새정치연합에서는 이 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내겠다고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친정인 새누리당에서 이 총리 조기 퇴진으로 입장을 정하고, 박 대통령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전달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결정적이었다.

결국 이 총리는 지난 2월17일 취임한 지 2개월여만에 총리직을 내려놓게 됐다. /연합뉴스